캘리포니아 바다사자 /Alaska department of fish and game

지금 어딘가에서도 수많은 죽임과 죽음이 일어나고 있을 거예요. 포식자의 이빨과 발톱에 힘없는 먹잇감의 몸뚱어리가 갈기갈기 해체되고 있을 겁니다. 또는 발버둥치고 절규하는 채로 포식자의 입속으로 꿀꺽 삼켜지고 있겠죠. 이런 살상행위를 안타까워할망정 처벌은 할 수 없습니다. 먹고 살자는 짐승들의 본능이거든요. 굳이 죄를 묻자면 약자로 태어난 죄,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힌 죄죠. 하지만 이런 먹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 살상행이라면 차원이 다릅니다. 엄히 처벌해야죠. 처벌받아 마땅한 행위가 벌어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가 요즘 뒤숭숭합니다.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바다사자 살해사건이 발생했거든요.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발견된 바다사자. 머리가 잘려나간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와있다. /NOAA

일이 벌어진 작년 크리스마스로 거슬러올라가봅니다. 캘리포니아 보데가만에 있는 도란 생태공원에서 바다사자의 죽은 몸뚱이가 발견됐어요. 멀리서 봤을 때 꿈쩍않고 있는 갈색 몸뚱이로 말미암아 처음에는 자연사로도 추측됐어요. 하지만 구체적인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공원 관리자들이 사체로 가까이 갔다가 기겁을 하고 맙니다. 기다란 수염에 동글동글 눈망울을 하고 있어야 할 머리가 통째로 사라져있었습니다. 대신 절개부위에서는 피가 끈적이며 흘러나와있었어요. 사람의 소행이 분명했어요. 단검으로 여러 차례 칼질을 해서 거칠게 썰어낸 정황을 너덜너덜한 절개부위의 살점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용의자의 신상까지 흐릿하게나마 파악됐어요. 검은색 옷차림으로 전기자전거를 타고 있던 30~40대 남성입니다. 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잔혹한 짓을 했을까요?

/NOAA 동부스텔라바다사자 수컷이 여러 암컷과 함께 한 모습. 기각류는 대체로 수컷과 여러 암컷이 하렘을 이룬다.

이미 죽은 사체에서 머리만 베어낸 것일까요? 아니면 머리를 베어내기 위해 목숨을 뺏은 것일까요? 혹시 숨통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요? 범행동기는 무엇일까요? 혹시 해구신을 노리고 접근했다가 여의치 않은 신체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홧김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요? 잘려나간 바다사자의 머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온갖 억측이 괴담을 생산했고, 사건 발생 석 달이 지나도록 용의자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자 미국 연방정부기관인 국립대양해기청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 단서를 제공받기 위해 현상금 2만 달러(약 2897만원)를 내걸었습니다. 이 사안을 얼마나 엄중하게 보고있는지를 알 수 있죠. 1970년대 중반 절멸위기까지 갔다가 보호정책으로 숫자가 급증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는 퓨마·곰·코요테·울버린 등과 함께 북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짐승입니다. 해양동물보호법에 따라 보호받고 있죠.

기각류의 하나인 바다코끼리. 기다란 엄니때문에 코끼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육식인 기각류다. /U.S. Fish and Wildlife Service/Joel Garlich-Miller

밴쿠버·시애틀·포틀랜드·로스앤젤레스·샌디에이고 등 큰도시들이 밀집한 태평양 연안에서는 항구와 부둣가까지 터전으로 삼고 도시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무리들을 보는게 어렵지 않죠. 때때로 사람들을 잡아당겨 바닷물에 빠뜨리는 등의 행동으로 겁을 주기도 하지요. 통통한 몸집과 짧은 네 발로 뒤뚱뒤뚱 다니는 귀여운 모습의 바다사자를 보고 맹수라고 하는게 과연 합당한가 의문을 제기하실 수도 있을텐데요. 엄연히 맹수 집안의 일원이 맞답니다. 젖먹이 짐승 중에는 고래처럼 완전히 온전히 모든 삶을 바닷속에서 영위하는 무리들과 달리 바다를 터전으로 삼되 먹고 자고 새끼치는 것은 뭍에서 하는 비슷비슷하게생긴 무리들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바다사자를 비롯해 물개·강치·물범·바다코끼리·듀공·매너티 등이 주로 이렇게 생겼죠.

/National Parks Service / Sean Pickton 짝짓기철을 맞아 상륙한 코끼리물범 암컷과 수컷.

이 중 평생 물풀만 뜯고 사는 초식동물 듀공과 매너티는 바다소(해우·海牛)라 하여 별도의 무리로 분류합니다. 나머지들, 그러니까 주로 물고기와 오징어·문어·조개 등 해물을 먹고 사는 무리들은 통칭해서 기각류(鰭腳類)라고 합니다. 보통 길짐승들처럼 뭍을 걸어다니는 네발을 가진게 아니라 물고기나 고래의 지느러미 같이 생긴 지느러미발을 가졌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예요. 분류학적으로 보면 맹수들이 한 데 모인 개목(식육목)에 속합니다. 직접 짐승을 사냥해서 살코기를 뜯어먹는 무리라는 얘기죠. 단지 주로 사냥하는 터전이 물속이다보니 거기에 맞게 적응을 한것일뿐 킬러 본능을 타고난 사냥꾼이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보통 식육류 4대 문파를 고양이(사자·호랑이·표범 등)·개(늑대·여우·코요테 등)·곰(북극곰·불곰 등)·족제비(수달·담비·울버린 등)이라고 일컫는데 엄밀히 말하면 기각류까지 포함해서 5대 문파로 보는게 타당할지도 모르겠어요.

Oceanwide Expeditions 얼룩무늬물범이 주된 먹잇감인 펭귄을 사냥해 머리를 물고 있는 모습.

기각류의 특징은 포식자인 동시에 피식자, 그러니까 바다 생태계의 주축을 이루는 든든한 허리라는 점입니다. 물고기와 오징어 등 해산물을 먹고 든든히 살찌운 몸뚱어리는 더욱 거대한 포식자들의 소중한 한끼식사가 됩니다. 알려진대로 범고래는 물개나 바다사자를 일단 포획권에 넣으면 잡아먹기 전까지 거대한 꼬리지느러미로 스매싱하고 내동댕이치며 공놀이 하듯 유희를 즐기며 육질을 부드럽게 다듬습니다. 북극곰은 물범이 숨을 쉬기 위해 물속에서 올라와 얼음구멍으로 고개를 내밀 때를 기다렸다가 한 방에 강력한 앞발로 후려쳐서 두개골을 박살낸 뒤 얼음덩이를 선홍색 핏빛으로 물들이며 살덩이와 내장을 끄집어내 뱃속을 허겁지겁 채웁니다. 아프리카 바닷가에서는 해안가까지 침투한 갈색하이에나들이 어미 물개로부터 갓난 새끼를 떼어내 모래 언덕 너머로 가져가 성찬을 즐기고, 남은 찌끄레기라도 노리는 재칼이 주변을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비정한 장면도 연출됩니다. 관련 동영상 한 번 보실까요?

하이에나가 물범 새끼를 잡아먹고 있다. /페이스북 @Nature Nook

기각류들이 늘 이렇게 ‘약하고 만만한 사냥꾼’의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가 해산물을 주식으로 삼지만, 이 중에 좀 더 큰 먹잇감을 즐겨 사냥하는 종류가 있어요. 바로 얼룩무늬물범입니다. 영어 이름은 레오퍼드 실(leopard seal), 즉 표범 물범이라는 뜻인데요. 살벌한 이름에 걸맞게 놈의 주식 중에는 펭귄을 비롯한 바다새도 포함돼있어요. 제몸뚱이와 거의 비슷하게 생긴 펭귄을 쫓아가 기어이 입으로 낚아 챈 뒤 거칠게 물고 흔들어서 펭귄 몸을 공중에서 사분오열 시키는 특유의 살상기술은 놈들이 몸뚱어리는 거대하고 다리를 짧아도 그래도 킬러 본능을 가진 맹수임을 말해줍니다.

아메바부터 침팬지까지, 사람 빼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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