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22번째 레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디즈니 영화 ‘백설공주’입니다. 1937년 디즈니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실사화한 작품이죠. 디즈니 최초의 프린세스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초대형 프로젝트였으나, 2021년 라틴계 미국 배우 레이첼 지글러를 캐스팅한 이후로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여론을 뒤집을 한 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시사회에 갔으나, 영화를 보고선 원작 애니메이션이 그리워졌습니다.
“눈처럼 하얀 피부”라는 원작의 설정은 “거친 눈보라를 뚫고 태어난 아이”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피부색이 아니었습니다. 지글러의 백설공주는 짙은 눈썹과 각진 얼굴로 원작의 해맑고 동글동글한 백설공주와는 영 딴판입니다. 분노하는 장면에선 이를 악물고 아래턱을 내밀며 연기하는 습관이 있던데, 여린 소녀보다는 센 언니 같은 느낌입니다. 지글러는 “백설공주가 의지 있고 강인한 인물로 보여야 한다”고 했더군요. 목표가 그랬다면, 성공인 것 같습니다. 공주가 물에 빠졌다가 나오거나 말을 타고 달리는 몇몇 장면에선 자꾸 타잔이 떠올라 당혹스러웠습니다.
원작에서 백설공주의 소원은 “진실한 사랑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2025년 공주의 소원은 담대하고 용감해져서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왕자도 사라져버렸습니다. 대신 여왕과 맞서는 도적단의 대장과 사랑에 빠지고, 의로운 도적들의 도움을 받아 진정한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의 재해석은 필요하지만, 모든 공주가 모아나처럼 진취적이고 용감한 영웅이 돼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원작의 백설공주는 나약하고 수동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역경 속에서도 늘 주변에 친절을 베풀고, 숲속의 작은 동물들과도 교감하고, 조용히 궂은일을 척척 해내는 낙천적이고 온화한 매력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선 백설공주만의 특징이 사라져버렸습니다.
1989년작 원조 ‘인어공주’를 만든 존 머스커 감독은 “인종에 상관없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하면 되지만 관객에게 혼란을 줄 때 문제가 생긴다. 오로지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몰입을 방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영화 역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증명하기 위해 원작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관객을 미로 속에 빠뜨립니다. 여왕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묻는데 왜 마법 거울은 “마음속의 진정한 아름다움” 얘기를 하는 건지, 여왕은 “내면의 아름다움 따윈 쓸모없다”면서 왜 백설공주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로 영화가 끝납니다.
여왕 역을 맡은 갤 가돗이 나올 때만큼은 불편했던 속이 소화제 마신 것처럼 가라앉습니다. ‘원더우먼’으로 잘 알려진 가돗은 길이 6m 넘는 망토에 400여 개의 보석을 휘감고 나와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뽐냅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일곱 난쟁이들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사랑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왜소증 배우의 일감을 뺏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겠지만요.
아쉬운 마음에 혹평을 썼지만, 노래만큼은 완성도가 높습니다. 레이첼 지글러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3만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스타. 깨끗하고 청아한 음색과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노래들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대부분 새로 작곡한 노래로, 원작에서 가장 사랑받은 OST였던 ‘Someday my prince will come(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야)’은 사라졌습니다. 영화에선 듣지 못하는 이 노래를 레터에 함께 보내드립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