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모금에 갓 구운 브리오슈와 버터가 녹아내리고, 뒤이어 시나몬과 가죽, 바닷바람이 밀려온다. 피니시는 촉촉한 이끼 위를 거닐다가 깊은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마무리되는 느낌.”

스카치 위스키 라벨. 파인애플, 망고, 바나나, 코코넛, 화이트 초콜릿 같은 풍미가 테이스팅 노트로 적혀 있다. /김지호 기자

위스키에서 정말 이게 느껴지시나요? 현실은 그냥 ‘탄내 나는 술’일 수도 있습니다. “위스키 애호가라면 이 정도 맛은 찾아낼 수 있어야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냥 술인데?”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테이스팅 노트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요? 아니면 몇몇 입맛 까다로운 이들의 언어유희와 과장된 감각 놀이일까요?

위스키 테이스팅 노트는 감각을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미각은 다르고, 같은 위스키도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마시는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개인차가 지배하는 감각의 세계

위스키 라벨에 ‘잘 익은 무화과와 헤더 꿀,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은 단어들이 줄줄이 적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평소 내가 알던 무화과 맛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대체 어떤 케이크인지 감도 안 잡힌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위스키 테이스팅 노트는 술 한 잔을 문학적으로 포장하는 마케팅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느껴야 할 맛’이라고 주입하려는 업체 측의 가스라이팅인 셈이죠.

사람마다 위스키 즐기는 방법이 다릅니다. 테이스팅에는 정해진 방법이나 규칙이 없습니다. 한 모금을 크게 무는 사람도 있고 ‘찍먹’ 정도로 만족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개인의 미각은 유전, 경험, 심지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군가에게는 꿀 같은 달콤함도 그저 쓴 나무껍질 맛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미각은 과학적으로도 차이를 보입니다. 1991년, 예일대학교의 생리학자 린다 바르토슈크(Linda Bartoshuk) 박사는 사람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슈퍼 테이스터(Supertaster), 미디엄 테이스터(Medium Taster), 그리고 논 테이스터(Non-Taster)입니다.

인구의 약 25%인 슈퍼 테이스터는 미뢰의 수가 많아 맛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쓴맛에 민감하여 브로콜리, 커피, 다크 초콜릿, IPA 같은 음식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슈퍼 테이스터는 위스키의 탄 맛과 알코올의 자극을 더 강하게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50%는 미디엄 테이스터에 해당하며 일반적인 미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쓴맛이나 단맛을 적당한 수준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죠. 나머지 25%는 논 테이스터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미뢰의 수가 적어 맛을 약하게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위스키의 높은 도수나 강한 풍미를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미각이 쓴맛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후각, 온도 감각, 촉각까지 결합하여 우리가 느끼는 맛을 형성합니다. 즉, 같은 위스키를 마시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섬세한 캐러멜과 향신료의 조화’가 느껴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알코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테이스팅 노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대형 위스키 브랜드에서는 공식 테이스팅 노트를 만들기 위해 숙련된 블렌더들과 전문가들이 시음을 진행합니다. 이들은 수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향과 맛을 분석하지만, 여기에 마케팅 요소가 개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공식 노트에 ‘잘 익은 체리, 말린 무화과, 오렌지 껍질’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가 이런 맛들을 직접적으로 느낄 가능성은 작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기대치를 조성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무미건조하고 담백한 표현 보다는 미학적인 표현이 소비자에게 더 감성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죠.

위스키 평론가나 리뷰어들의 테이스팅 노트도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자라온 환경, 기분, 심지어 평소 본인이 먹었던 음식까지 미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Jim Murray) 같은 전문가들도 같은 제품을 다시 평가할 때 다른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테이스팅 노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버번에 표기된 테이스팅 노트. /김지호 기자

그렇다면, 위스키 테이스팅 노트는 믿을 만한 걸까요? 정답은 ‘참고는 하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말 것’입니다. 테이스팅 노트는 위스키의 기본적인 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스모키한 해양의 풍미’라고 적혀 있다면, 이 위스키에는 피트가 사용됐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반면 ‘꿀과 바닐라의 달콤함’이 강조된다면, 적어도 매캐한 연기 맛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하지만 잘 익은 복숭아. 따뜻한 가죽, 바닷바람 같은 표현이 실제로 모든 사람의 미각에서 동일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결국 위스키의 맛은 개인의 경험과 감각에 달려 있습니다. 누군가가 ‘젖은 이끼 위를 거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도, 본인이 ‘탄내 나는 위스키’라고 느꼈다면 그게 정답입니다.

테이스팅 노트에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활용법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맛을 이렇게 느꼈구나”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전문가들이 무엇을 느꼈든 중요한 것은 본인이 직접 맛보고, 자신만의 느낌을 찾는 것입니다. 결국, 위스키는 언어가 아니라 입으로 즐기는 것이니까요.

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다. 좋은 위스키와 더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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