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김영사

“커피 머신이 한 대 있다고 생각해보자. 매일 버튼을 눌러 에스프레소를 내렸는데, 어느 날 머신이 말한다. ‘너를 몇 주 관찰하고 학습한 게 있어. 너는 오늘 에스프레소를 원할 것 같아. 그래서 미리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놨어.’ 그러더니 다음 날엔 새로 창작한 ‘제스프레소’까지 준다.”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49)는 20일 기자 간담회에서 인공지능(AI)을 이렇게 설명했다. 석기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가 발전한 과정을 추적하고(‘사피엔스’), 생명공학 등으로 신(神)과 같은 힘을 얻은 인류의 미래를 그린(‘호모 데우스’) 하라리는 지난해 출간된 ‘넥서스’를 통해 인류 턱밑까지 올라온 AI의 잠재적 위험성을 경고했다. “커피 정도야 좋다. 그런데 AI가 약도, 무기도, 새로운 종교도 만든다면?”

하라리는 “지금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고도화된 정보 기술을 가졌지만 대화는 더 안 된다”며 “챗봇이나 알고리즘 등이 가짜 뉴스나 음모론 같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일으키는 콘텐츠를 퍼뜨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결국 인간 사이 신뢰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라리는 “이를 막기 위해선 제도적으로는 ‘이게 인간이 만든 건지 AI가 한 건지’를 분명히 하는 법이, 사람들 사이에선 조금 더 관대하게 서로를 봐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보 다이어트’도 강조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정크푸드를 피하는 등 뭘 먹을지 굉장히 신경 쓴다. 정보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보를 얼마나 얻느냐를 신경 써야 한다. 쉴 틈 없이 정보에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말고 음식을 소화하듯 성찰해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계엄령과 탄핵 국면 등 최근 한국의 상황을 묻는 질문엔 “처음 인도에서 친구가 ‘코리아’라고 해서 북한에 쿠데타가 발생한 줄 알았는데 남한이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잠깐 경험한 외국인이 ‘이게 답이야’라고 하는 걸 피하려고 노력한다”면서 그의 책 ‘넥서스’에도 나온 민주주의 이야기를 했다. “민주주의 핵심은 언론 자유와 사법부 독립이다. 이게 없다면 선거를 해도 의미가 없어진다. 북한이나 러시아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