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인 라이벌 관계를 배우고 싶다면 태진아와 송대관을 보라”.
최근 서울 이태원동에서 만난 태진아(72)는 과거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정치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해 주고 싶다며 들려준 이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태진아와 지난달 작고한 송대관의 사이는 오랜 시간 ‘트로트계 공식 톰과 제리’로 통해왔다. 서로 라이벌이라며 투닥거리다가도 늘 함께한 트로트 짝꿍이다. 2000년대 초 댄스 장르에 밀려 트로트의 인기가 약세였을 때도 두 사람은 라이벌로서 인기 가수상 시상식에 꾸준히 얼굴을 보였다.
태진아는 “대관이 형이 우리 둘 사이를 입버릇처럼 부르던 별칭은 ‘실과 바늘’이었다”고 했다. 이날 태진아를 만난 장소는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자 송대관과 추억이 서린 공간이었다. 그는 “대관이 형이 명란 파스타를 참 좋아해서 여기 자주 들렀다. 불쑥불쑥 술 한잔 하자며 찾아왔고, 와인 한 병 따 놓고 자식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잔뜩 하곤 했다”고 했다.
태진아가 지난 23일 낸 신곡 ‘친구야 술 한잔하자’의 가사에도 두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그러나 태진아는 “이 노래를 형의 추모곡처럼 쓰고 싶진 않다”고 했다. “형이 떠나기 전날까지도 5월에 하자고 했던 우리 두 사람의 라이벌 디너쇼 계획을 전화로 잔뜩 떠들었어요. 이 노래도 이미 오래전 녹음해둔 거고, 본래라면 방송에서 서로 즐겁게 놀리는 데 쓰였을 건데….”
태진아는 1953년생, 송대관은 1946년생으로 라이벌 친구처럼 여겨진 이미지와 달리 꽤 나이 차가 있는 편이다. 데뷔도 송대관이 5년 선배. 태진아는 “처음에는 제가 대관이 형을 어려워했다”고 했다. 송대관이 1975년 ‘해뜰날’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때부터 공연 대기실에서 종종 마주쳤지만, 당시 태진아는 1972년 1집 ‘내 마음의 급행열차’로 데뷔한 지 3년 차인 신인 가수였다. 그는 “그땐 형이 가까이 하기엔 먼 스타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둘의 사이가 가까워진 건 둘 모두 1980년대 미국에서 힘든 이민 시절과 공백기를 보내면서였다. 태진아는 “형은 1980년 1월, 저는 1981년 미국에 갔다”며 “현지에서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알음알음 소식을 서로 들었고, 귀국 후 본격적으로 교류가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형은 언제나 제게 멘토였다”며 “미국에서 형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하는 게 참 멋있고 부러웠던 게 지금 제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대관이 형이 자주 ‘동생, 형 가는 길만 따라오면 너는 그냥 잘되는 것이여. 나 가는 길만 따라와’라고 하곤 했죠.”
두 사람이 ‘라이벌’로 떠오른 건 1997년 개그맨 김미화가 진행하던 코미디쇼 ‘이 밤의 끝을 잡고’가 계기였다. 매주 게스트가 김미화의 남편 역으로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 초기에 태진아와 송대관이 차례로 섭외됐고, 작가진이 서로를 저격하는 콩트를 요청했다. 가요계 선배인 송대관에겐 자칫 불쾌할 수도 있는 요청이었지만, 태진아는 “대관이 형이 유쾌하게 응하면서 방송이 순탄하게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대중 반응은 뜨거웠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라이벌 구도로 각종 예능 방송과 CF를 섭렵했다. 태진아는 “한번은 인천공항을 가는데 저는 관세청 홍보대사로, 대관이 형은 인천출입국관리소 홍보대사로 사진이 걸려있는 걸 보고 박장대소했다”며 “우리는 전략적인 라이벌 관계였다”며 웃었다. “그 덕에 우리가 오히려 서로 빛나고, 가요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며 트로트를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알릴 수 있었죠. 어떨 때는 형이 전화를 걸어서 ‘야야, 다음 방송에선 이렇게 서로 씹어보자’며 의논을 했어요. 참 정 많고 유쾌한 형이었죠.”
태진아는 송대관이 자신에겐 “힘든 시기를 이어 붙일 힘을 주는 든든한 동반자였다”고도 했다. 1993년 히트곡 ‘사모곡’도 송대관이 아니었다면 세상 빛을 제대로 못 봤을 것이라고 했다. 태진아는 “발매 초기 반응이 없어서, 그냥 활동을 접으려 했다. 심한 슬럼프를 겪었다”면서 “그때 대관이 형이 ‘그냥 접지 말고 딱 6개월만 더 버텨라. 분명 이 노래는 뜬다’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사모곡’은 라디오에서 주부들이 어머니를 추억하는 사연 신청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태진아는 지난 17일 KBS1 가요무대가 꾸린 추모 방송에서 송대관의 ‘네박자’를 부르던 도중 “대관이 형, 보고 싶다”를 외치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형이 떠난 뒤 3일 동안은 속상해서 술만 마셨고, 그 뒤로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며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니 그제야 형이 빈자리가 딱 체감됐다”고 했다. “형과 마지막으로 함께 사진을 찍은 것도 올 초 가요무대 대기실이었습니다. 방송 대기실도 늘 짝처럼 같이 쓰고, 각자 노래를 너무 잘하니 가끔 서로 리허설도 대신 서 줬는데…. 살면서 노래할 때마다 대관이 형이 계속 보고 싶을 겁니다.”
“우리는 실과 바늘이여” 태진아가 간직한 송대관의 말
송대관은 생전 태진아와의 관계를 ‘실과 바늘’이라고 했다. 태진아는 그때마다 “끈끈한 연결 고리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송대관이 2019년부터 담도암 투병을 시작해 지난해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수천만 원 병원비를 보태기도 했다. 태진아는 “형은 평소 아프단 투정을 참 잘 안 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며 “담도암 투병 사실도 함께 디너쇼 연습을 하던 날 갑자기 수술 자국을 보여줘서 알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주변에는 늘 힘을 북돋아 줬다. 그래서 빈자리가 더욱 마음 아프다”고 했다. “제가 주춤할 때마다 대관이 형이 ‘접지 말라’ 한마디 해주면 그렇게 든든했다. 내게는 최고의 동반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