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커다일과 엘리게이터가 싸우고 있다. /Storyful. FOX13

지난주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권투 선수 조지 포먼의 별세 소식은,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세계 권투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맞대결을 소환했습니다. 1974년 콩고민주공화국(당시 자이르) 수도 킨샤사에서 열렸던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의 시합이죠. 세계 권투계의 쌍벽을 이룬, 그러나 스타일도 인생 여정도 극과 극을 달린 두 챔피언이 국토의 대부분이 정글로 덮여있는 콩고민주공화국에 설치된 링에서 맞붙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이벤트였죠. 이렇게 한 세기에 볼까말까한, 도저히 성사되지 않을 것 같은 환상의 빅매치가 인간계가 아닌 파충류계 악어월드에서 성사됐습니다. 우선 동영상 공유 사이트 스토리플(Storyful)에 올라온 장면부터 보실까요?

크로커다일과 엘리게이터가 싸우고 있다. /FOX13

악어와 뱀이 득시글거리는 파충류 왕국 미국 플로리다주 에버글레이즈 습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사람에게 그렇게 위협적인 크기라고 보기는 어려운, 그러나 파충류의 제왕 악어의 아우라가 묻어나는 두 괴수가 맞붙었습니다. 비슷비슷해보이지만 두 놈의 생김새와 행동은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네 발을 쳐들고 공세적으로 달려드는 놈의 주둥이는 뾰족하고 이빨은 촘촘하면서도 불규칙적으로 돋아있어요. 악어월드 4대 문파 중 부동의 원탑 크로커다일입니다. 반면 네 발을 바닥에 붙이다시피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방어 위주의 대련기술을 선보이는 놈은 주둥이도 상대적으로 둥그스름하고 이빨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일 뿐입니다. 악어월드의 넘버 투 앨리게이터입니다. 둘의 차이는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의 외모만큼이나 확연합니다. 생김새와 습성도 판이한 이들이 한 공간에서 그것도 혈투로 맞붙는다는 것은 지금껏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그런 상황이 눈앞에서 현실화된겁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파충류이자 앨리게이터의 맏형으로 꼽히는 미시시피악어. /National Park Service

인간이 일부러 두 놈을 맞붙이는 개입을 한 건 아닙니다. 여기는 플로리다입니다. 환상의 나라 디즈니월드가 있는 곳, 미국 문학의 거대한 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문학혼이 서린 곳, 동남아가 원산인 괴물 뱀 버마비단뱀이 새로운 터전으로 삼은 에버글레이즈 습지가 있는 그 플로리다 말입니다. 이 플로리다는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가 공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에버글레이즈 터줏대감은 앨리게이터의 맏형인 미시시피악어죠. 하지만 이곳에는 미시시피악어만큼의 존재감은 없지만, 크로커다일의 일원으로 중남미부터 미국 남부까지 토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메리카악어가 있습니다. 앞서 화면에서 맞붙은 두 놈을 봐서 알겠지만 이들 모두 다 자라면 대략 6~7m 가량 되니 덩치마저도 엇비슷해요.

크로커다일류로 드물게 미국에 서식하고 있는 아메리카 악어. /National Park Service

1분 남짓 화면에 녹화된 싸움에서는 앨리게이터와 크로터다일의 특성이 고스란히 엿보입니다. 악어의 전매특허는 포악하고 드센 성질머리인데, 크로커다일이 좀 더 사납다고 알려져있죠. 역시 아메리카악어가 크로커다일답게 미시시피악어를 거세게 몰아붙이며 물어뜯으려 합니다. 앨리게이터라고 해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것만은 아닙니다. 무지막지한 치악력을 앞세운 일격은 여지없이 위력을 발휘합니다. 깐족대다시피하면서 몰아붙이는 아메리카악어의 입을 ‘딱’ 소리를 내면서 두 턱으로 순식간에 닫아버리는 순간의 타격감을 보세요. 아직 좀 더 성장이 필요한 두 놈은 경험 미숙인지 필살기를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공포의 회전 공격 ‘죽음의 회전(데스 롤·Death Roll)’말입니다. 양쪽 중 한놈이 상대방에게 데스롤을 작렬했다면 이런 장면이 펼쳐졌을 거예요.

크로커다일의 대표종으로 꼽히는 호주의 바다악어. /Queensland Government

빈틈을 노려 바로 상대방의 앞발을 물고 몸뚱이를 360도 빙그르르 돌려 앞발을 부욱 뜯어낸뒤 놈이 보는 앞에서 낼름 꿀꺽 삼켜내는 것으로 충분히 기선 제압을 했을 것이란 말입니다. 내친 김에 상대방을 더욱 그로키 로 몰아넣어 마침내 몸뚱이 전체를 좍좍 조각내어 아직 신경이 살아있어 꾸불텅거리는 신체 조각을 자신의 위장속으로 탈탈 털어넣었을 수도 있습니다. 악어는 잔혹할 정도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지독하게 강한 놈이 살아남습니다. 동족포식은 강자를 살려내고 약자를 가차없이 처단하는 비정한 수단으로 작용하죠. 그 비정함 때문에 오늘날 악어는 가장 진화한 파충류, 가장 똑똑한 파충류, 가장 힘세고 거대한 파충류, 가장 간악하고 잔혹한 파충류로 여러 겹의 악명을 떨치고 있는 것이죠.

크로커다일의 제왕으로 꼽히는 아프리카의 대형 파충류 나일악어. John Bowden/HML. NIST

아메리카악어는 드물게도 미주대륙에 터를 잡은 크로커다일입니다. 크로커다일의 대장자리를 두고 미주대륙에서 한 참 떨어진 거리에 사는 두 괴물이 자웅을 겨룹니다. 아프리카의 나일악어와 호주·동남아의 바다악어예요. 사바나의 물웅덩이에 통나무처럼 잠복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덩치 큰 영양을 잡아서 죽음의 회전 기술을 통해 산채로 조각낸 뒤 뼈까지 삼켜버리는 잔혹한 사냥법으로 유명한 나일악어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만 바다악어의 카리스마도 전혀 뒤처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다악어는 민물과 바닷물을 자유롭게 오가는 신체구조에다가 야생동물, 가축, 심지어 사람까지 노리는 극강의 생존력으로 번성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호주퀸즐랜드에서 주민이 기르던 반려견이 실종되는 일이 있었는데, 최첨단 드론 기술 때문에 잔혹하게 희생된 개의운명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악어의 급습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점심식사감으로 전락한 반려견의 최후가 담긴 동영상(Yahoo Australia News Facebook)한 번 보실까요?

호주 바다악어가 반려견을 물고 헤엄치고 있다. /페이스북 @Yahoo News Australia

이들의 거친 야성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샌님같아 보이지만 앨리게이터 역시 괴수입니다. 크로커다일의 주식이 주로 영양이나 멧돼지 같은 젖먹이 짐승이라면, 앨리게이터의 주된 사냥감은 물고기나 다른 파충류들입니다. 특히 비슷한 처지의 북미 토종 파충류들에게 앨리게이터는 더없는 저승사자입니다. 거친 성미와 단단한 이빨로 무장한 신체와 사냥습성 때문에 ‘악어’라는 이름이 붙은 악어거북이 앨리게이터의 한입거리로 사라지기전에 무참히 패대기질 당하는 장면(One Wildlifer Facebook) 한 번 보실까요?

미시시피악어가 악어거북의 머리를 물고 흔들고 있다. /페이스북 @oneWildlifer

악어월드에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분류학상 넓은 의미의 앨리게이터 무리에 속하지만, 한결 더 둥글둥글한 주둥이와 왜소한 몸매, 소심한 성질 때문에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재규어·아나콘다·왕수달 등의 먹거리로 더 많이 희생되는 가련한 남미의 카이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악어월드를 이루는 4대 문파 중 가장 유약하고 존재감이미미한 가비알이 있습니다. 촉새 같은 주둥이가 보는 순간부터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경계감을 해제시키기도 하죠. 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주둥아리를 양옆으로 날카롭게 움직여 물고기를 혼절시킨 뒤 사냥하는 장면을 보면 역시 괴수들의 집안 악어의 일원이구나 싶습니다.

아메바부터 침팬지까지, 사람 빼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수요동물원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