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24번째 레터는 영화 ‘승부’입니다. 지난달 26일 개봉 이후 줄곧 1위를 지키고 있죠. 어제 2일까지 관객 87만7644명입니다. 100만명은 곧 넘을 듯 하고, 손익분기점 180만명을 언제 어떤 속도로 넘길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네요. 이번 주는 정치 이슈 때문에 영화관이 여느 주말보다 한산할까 걱정입니다. 기자야 객관적인 관찰자이긴 하지만, 영화 만들고 홍보한다고 애쓰시는 분들을 만나다보면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번 주 영화관에서 연령대 불문하고 고루 만족도 높은 영화를 찾으신다면 ‘승부‘가 안정적인 선택입니다. 바둑? 일(1)도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승부‘의 실제 주인공인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자서전에 대해 살짝 말씀드려볼게요. 제가 기사 쓰기 전에 읽으면서 밑줄 그었던 구절 위주로, 알고 보시면 더 재밌게 보실 부분 추려보았습니다.
우선, 영화 ‘승부’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제가 쓴 저희 신문 26일자 기사를 아래 붙여드리겠습니다. (링크 붙여드리면 간혹 작동이 안 된다는 구독자분들도 계셔서요.)
제자에게 졌다… 도리 없다, 그것이 승부니까
조훈현·이창호의 바둑 대결… 영화 ‘승부’ 오늘 개봉
“바둑의 신(神)하고 둔다고 해도 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1989년 9월 ‘바둑 올림픽’ 잉창치배(應昌期杯)에서 중국의 녜웨이핑(聶衛平)을 꺾고 우승한 조훈현은 기세등등했다. 패배를 모르는 ‘바둑의 전신(戰神)‘으로 불렸다. 9세에 최연소 프로 데뷔한 그는 30대 중반에 절정의 기백이 넘쳤다. 10대 제자 이창호를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조훈현이 한지붕 아래 재워주며 먹이고 입혀가며 가르친 내제자(內弟子) 이창호는 불과 15세에 스승이 가진 타이틀을 차례로 빼앗고 계산의 귀재라는 ‘바둑의 산신(算神)‘으로 떠올랐다. 창졸간에 무관으로 전락한 조훈현은 그대로 무너진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다.
영화 ‘승부‘(26일 개봉, 감독 김형주)는 19줄 반상을 매캐한 화약 연기가 뒤덮인 전장으로 그린다. 마주 앉은 두 기사는 스물두 살 차이 나는 스승과 제자. 스승이 앞서가면 제자가 따라붙고, 제자가 집을 지으면 스승이 뛰어들어 부숴버린다. 스승 조훈현(이병헌)은 빠르고 화려했다. 기세와 공격의 바둑이었다. 제자 이창호(유아인)는 두텁고 묵직했다. 인내와 수비의 바둑이었다. “어서 물고 뜯고 덤비고 싸우라”고 말하는 스승에게 “그건 선생님 스타일”이라고 제자는 맞선다. 조훈현은 훗날 자서전(2015)에서 “창호는 떠오르는 태양이었다”며 “그 이글거리는 뜨거운 열기에 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조훈현은 어린 제자를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 “나도 배운다, 내가 언제든지 질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그는 그렇게 제자라는 거울을 보며 다시 태어났다.
‘승부‘는 개봉부터가 쉽지 않은 승부였다. 2021년 4월 촬영을 마쳤으나 코로나를 만났다. 2023년 넷플릭스 공개 예정이었으나 유아인의 마약 논란이 불거졌다. 원래 투자 배급사가 영화 사업을 접으며 언제 빛을 볼 지 알 수 없는 위기로 몰렸다. 작년 겨울 곽도원 음주 논란의 영화 ‘소방관‘을 소생시킨 투자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가 나서면서 간신히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게 됐다.
유아인 논란이 없었더라도 ‘승부‘는 이병헌의 영화다. 이병헌은 10대 제자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긴 쓰라림을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핑그르 차오르는 눈물에 담는다. 이기지 못하는 초조함, 결국 져버린 초라함, 지울 수 없는 열패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유아인은 과묵한 이창호 역으로 주변 공기까지 누그러뜨린다. 스승을 이긴 날, 벅차야 할 승리의 순간에 “죄송하다”며 터뜨린 울음에선 아직 여린 10대 소년이 내비친다. 이병헌의 라이벌이자 조언자인 남기철 9단 역의 조우진은 짧은 분량에도 조연 이상을 보여준다. 영화 ‘내부자들‘(2015)에서 “여 하나 썰고, 여 썰어”라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병헌(안상구 사장)의 손목에 쇳톱을 갖다댔던 조우진은 ‘승부‘에선 이병헌을 일으켜 세운다. “배우려고 하지 말고 이길 궁리를 해보라”며 이창호를 자극하고, “선생보다 제자가 낫다”며 이창호의 능력을 먼저 알아본 것도 그였다.
연출과 각본에선 바둑을 전혀 모르는 관객까지 끌어안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조훈현이 다리를 떨면 그 판은 무조건 잡는다’ 등의 긴장 포인트를 곳곳에 심었다. 어린 이창호(김강훈)가 지나치게 밝고 활발하게 연출된 점은 아쉽다. 실제 이창호는 어릴 때도 사흘에 한마디 듣기 힘들 정도로 과묵했다. 어린 이창호의 명랑함은 성인 이창호의 말없이 단단한 연기와 대조돼 인물의 균형을 깨뜨린다.
“또 너냐. 도리 없지. 이것이 승부니까.” 다시 반상에서 제자를 적수로 마주한 조훈현의 담담한 인정은 또 한 번의 패배라도 감내하고 이겨나가겠다는 선언이다. 조훈현은 이후에도 제자와 대적했고 때로 패했지만 재차 도전했다. “적어도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는 않음으로써 나 자신을 증명해보였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결과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까지 승부의 일부이기에. 영화 초반 조훈현은 “일류가 아닌 인생은 너무 서글프다”고 했다. 그럼에도 다시 대국에 나선다. 도리 없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제가 위의 기사에서 언급한 조훈현 9단의 책은 ‘고수의 생각법‘(2015)입니다. 함께 읽은 이창호 9단의 자서전은 ‘이창호의 부득탐승(不得貪勝)‘(2011)인데요, 부득탐승은 바둑 십계명 중 첫 번째 원칙이자 나머지 아홉가지 실천강령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승리를 욕심내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뜻. 이기려면 버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라는데, 진정한 고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것 같습니다.
조 9단은 제자에게 모든 타이틀을 다 뺏기고 무관의 신세가 된 심정을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적으셨어요.
그래, 밑바닥까지 떨어졌으니 이제 더 나빠질 게 없어. 지금부터는 올라갈 일만 남은 거야. 이런 긍정적인 생각들이 마구 솟아났다. 아마도 살려고 그랬을 것이다. 계속 고통과 분노에 싸여 있으면 죽는 길밖에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계속 바둑을 하며 살아야 하니까 그랬을 것이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긍정적인 생각을 어루만지며 어둠 속에서 서서히 기어올라 갔다. 무관이 된 후로 나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대회에 참가했다.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모든 걸 잃고서, 다른 사람도 아닌, 데리고 살던 제자에게 뺏기고서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는게 저 같은 범인으로선 짐작이 쉽지 않네요.
이창호 9단이 조9단의 내제자로 들어간 것은 9살 때였는데요, 짐작과 달리 조9단은 처음엔 이9단이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창호를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 이 아이가 세계적인 기사가 되리라는 확신은 내게 없었다. 외모도 둔하고 말도 어눌하고 심지어 방금 두었던 바둑을 복기하는 것조차 서툴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기이한 느낌이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느낌에 이끌려 창호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우리 집에 있는 6년 동안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묵묵히 정진한 아이답게, 그의 바둑은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가듯이 그렇게 발전을 했다.
영화에선 이 부분이 확연히 다르게 표현됩니다. 어린 시절엔 명랑하고 당돌하고 심지어 도전적으로 나오는데, 유아인이 연기하는 시점부터 갑자기 어눌하고 과묵한 모습으로 변하죠. 이 변형의 낙차가 영화에서 잘 연출된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도 큰 흠은 아니고 다소 아쉬운 정도네요.
내제자로 들어가 살게된 무렵, 이창호 9단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9단은 책에서 “행복한 나날이었다”고 썼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선생님 댁에 함께 살았다. 나의 방은 2층에 마련됐다. 전주의 집에서도 두려웠던 ‘나 홀로 밤‘은 선생님의 부모님과 함께 자는 것으로 해결됐다. 혼자서 잠 못 자는 나의 버릇을 들어 익히 알게 된 선생님 내외의 자상한 배려였다. 그때부터 사모님을 작은 엄마라고 불렀다. 나에게 제2의 가족이 생긴 것이다. 오직 바둑 하나의 열망으로 잠들고 깨던 행복한 나날이었다.
스승을 이긴 복잡한 마음에 대해서도 그대로 썼습니다.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승리의 기쁨을 누릴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끝을 기다릴 수밖에. 한두 번 반복된 일도 아니지만 승리의 기쁨과 선생님에게 패배의 고통을 안겨드렸다는 송구스러움 사이의 갈등은 항상 내게 작지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이창호 9단의 책에서 내내 느껴진 것은 스승인 조9단을 향한 존경심과 애정이었습니다. 책 곳곳에 감사한 마음을 적었는데요, 읽다보면 아, 단순히 예의를 차리려고 하는게 아니구나, 진심이구나, 누구나 느낄 정도에요. 이9단 정도면 자기자랑만 내내 적어도 지면이 모자랄텐데. 예를 들어, 두 사람의 대국을 다룬 잡지 ‘월간바둑‘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보게 된 심정을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우연히 오래된 ‘월간바둑‘을 보았다. 거기에 실린 빛바랜 사진. 그 속에서 나는 어수룩한 표정으로 말없이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고, 선생님은 어린 제자와 타이틀을 다툰 사실이 쑥스럽다는 듯 두 눈을 찡그리는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묘한 웃음 속에는 제자를 향한 참을 수 없는 기쁨과 자랑스러움이 깃들어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날 선생님의 웃음과 그 속에 숨겨진 제자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간혹 스승의 대국에 대한 평가도 나오는데, 여기에도 존경심이 곡진하게 배어있습니다.
선생님은 먼저 담배를 끊었다. 평창동 자택 지하철 창고에 장미 담배 1만개비들이 박스를 쌓아놓을 만큼 알아주는 체인스모커였던 선생님이 영원한 동반자일 것 같았던 담배를 끊어버린 것은 실로 대단한 결심이다. 그리고 내가 물 징크스, 비행기 징크스라는 신조어에 시달리며 해외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국내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속력행마를 가동시켜 세계로, 세계로 날아갔다. 과도기를 잘 활용하면 위대한 창조의 순간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집념이야말로 선생님이 한국 바둑의 영원한 국수가 된 까닭이다.
읽다가 괜히 미소가 지어진 구절이 있었는데, 조9단의 외모를 홍콩 액션스타에 비유한 부분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더욱.
젊은 시절 선생님의 얼굴은 홍콩 느와르의 액션스타같았다. 나는 요즘 선생님의 얼굴이 더 보기 좋다. 급경사를 이루던 하관은 둥글게 살집이 붙어 여유가 넘치고, 자연스럽게 물결치는 흰머리는 일부러 컬러코팅이라도 한 것처럼 멋들어진다. 나도 선생님처럼 멋진 중년이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스승과 제자는 다시 나오기 힘들듯 합니다. 만화로 그려도 개연성 떨어진다고 했을 거 같은데 실화라니. 조9단이 워낙 젊을 때 최고가 됐고, 이9단 역시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수년 만에 스승을 꺾어버린 전무후무한 승부사였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죠. 때론 인생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을 때가 있다는 걸 두 분의 이야기에서 다시 배웁니다. 그런 인생을 영화 ‘승부‘에서 만나보시길 추천드리며,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