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건, 언더도그(약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이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고 결국엔 놀라운 일을 해내잖아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에서 록 밴드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배우 라미 말렉(44)이 이번엔 액션 히어로로 변신했다. 9일 개봉한 영화 ‘아마추어’에서 말렉은 아내가 살해당한 이후, 복수를 위해 테러 집단을 맹렬히 쫓는 CIA 요원 찰리 헬러 역할을 맡았다.
큰 키에 근육질 몸, 날렵한 액션으로 적을 제압하는 기존의 스파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찰리는 평생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던 암호 해독가로 현장 경험이 전무하다. 아내가 테러범에게 인질로 붙잡혔다가 사망하자, 총 한 방 쏘지 못했던 찰리는 두뇌와 기술을 이용해 복수를 설계한다. 이날 한국 언론과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말렉은 “어떤 작품에서든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제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이집트계 미국인인 말렉은 170cm 작은 키와 왜소한 체격으로 스스로도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선 선입견을 깨고 개성 있는 얼굴과 번뜩이는 눈빛으로 색다른 유형의 스파이를 만들어냈다. 찰리 헬러는 자물쇠를 따기 위해선 유튜브를 보고 배워야 하는 ‘아마추어’지만, 휴대전화든 CCTV든 못 뚫는 보안 시스템이 없다. 말렉은 “액션 영화를 항상 좋아했고, 이 장르를 더 많은 사람에게 소구하기 위해 고민했다”고 했다. “프레디 머큐리 식으로 말하면, ‘맨 뒷줄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닿게 하자’고요. 소외되거나 과소평가를 받지만, 비범한 일을 해내는 그런 사람들에게 영화를 바치고 싶었어요.”
말렉은 ‘보헤미안 랩소디’로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지만 그 뒤로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악역, ‘오펜하이머’의 조연 등을 맡아왔다. 아카데미 수상 이후 단독 주연을 맡은 건 ‘아마추어’가 처음이다. 말렉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여러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 않았다. 선택을 할 때마다 꽤 신중하게 결정하려고 한다”고 했다.
캐릭터는 매력적이지만, 스파이 영화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무난하게 흘러간다. 주인공의 높은 지능과 해킹 능력도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어떤 장애물도 쉽게 뚫어버리는 탓에, 액션 영화에 기대하는 육체적인 분투가 느껴지지 않는다. 총을 쏘기 전에도 몇 번이고 망설이는 캐릭터라 오락적인 쾌감도 떨어진다. 말렉은 “영화는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총기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이 영화는 방아쇠를 당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관객에게 계속해서 묻는다”면서 “찰리 헬러는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