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장(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심코 놓치고 지나간 신간, 인터뷰에 담지 않은 후일담, 각종 취재기 등 이모저모. +α를 곁들여 봅니다.


[주의] 이 글은 윤성희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 중 단편 ‘자장가’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소설가 윤성희(52)의 신작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창비)을 읽고 며칠간 자나 깨나 ‘꽈배기’ 생각뿐이었습니다. 꽈배기를 먹고 싶어서 생각한 건 아니고요. 꽈배기의 물성(物性)에 꽂혔다고 해야 할까요.

배배 꼬인 빵을 떠올리면 왠지 웃음이 났어요. 폭신한 빵이 꼬였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지. 통통한 밀가루 반죽은 평온할 뻔했는데 꼬이고 말았고, 튀겨져서, 설탕에 돌돌 굴려집니다. 밀가루 반죽이 겪었을 지난한 과정을 생각하니 좀 서글프기도 하고요.

/창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소설집에 실린 두 단편 ‘타임캡슐’과 ‘자장가’에서 꽈배기가 나와서입니다. 소설가는 꽈배기를 인생에 빗대는데요.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던 꽈배기에 관한 서술이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어 킥킥대며 읽었습니다.

“어째서 고모는 꽈배기 장사를 하게 되었어요?” 기하 아저씨가 물었다. “인생이 자꾸 꼬여서 그랬대요. 그럴 바에는 꽈배기나 꼬면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단편 ‘타임캡슐’ 중에서)

그래서 나는 그럼 꽈배기도 만들어 팔라고 했다. 그러자 이모가 말했다. “인생이 자꾸 꼬여서, 그렇게 꼬인 것은 팔고 싶지 않아.” 꽈배기를 싫어하면서 스크류바를 좋아하는 건 뭔가 모순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내 말에 이모가 고개를 저었다. “스크류바는 녹잖아. 녹으니 꼬인 게 사라지는 거지.” 그 말을 들은 후로 이모의 음식을 먹을 때면 내 안에 있던 모난 것들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단편 ‘자장가’ 중에서)

소설집에서 어느 고모는 인생이 자꾸 꼬여서 꽈배기나 꼬자는 생각을 하고, 어느 이모는 인생이 자꾸 꼬여서 꽈배기 같은 것은 팔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소설가를 만나 인터뷰했을 때 이렇게 묻고 말았습니다. “결국 인생은 꼬인 거죠?” (이런 질문을 한 저도 조금 꼬인 듯합니다) 그러자 윤성희 소설가는 ‘자장가’의 이모처럼 답해주었습니다. “스크류바도 있잖아요. 꼬였지만 녹으니까 괜찮아요.” 이때의 ‘티키타카’가 기억에 남아서 인터뷰 기사의 리드(맨 앞)에 올렸습니다.

지난달 21일 오전 광화문에서 소설가 윤성희를 만났다. /장련성 기자

실제 소설가도 “꽈배기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꽈배기란 단어가 너무 웃겼다”고 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꼬아서 비트는 게 인생이 비틀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스크류바를 떠올리고, 스크류바는 녹지 않나? 한 것 같아요.”

소설가는 스크류바 CM송을 떠올렸고, 심지어 이를 100번 넘게 들었다고 해요. “이상하게 생겼네~”로 시작하는 이 CM송은 중독성이 엄청납니다. 낙타 캐릭터가 몸을 배배 꼬는 기괴한 장면도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윤성희 소설의 아이러니는 꽈배기에서 스크류바로 이어지며 킥킥대는 순간, 갑자기 비극이 찾아온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비정함이지요.

나는 스크류바 노래를 불러보았다. 이상하게 생겼네. 내 노랫소리에 앞에서 걷던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에 커다란 혹이 있는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저씨가 내 쪽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나는 달렸다. (중략) 오른쪽에서 트럭이 우회전을 하며 나에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응앙응앙. 어디선가 당나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단편 ‘자장가’ 중에서)

꽈배기 이야기를 하다가, 스크류바 CM송을 흥얼거리다가, 앗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어린 화자는 트럭에 치여 죽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꽈배기가 소설가의 말처럼 “생(生)과 사(死)의 아이러니”를 환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뜬금없지만, 조선일보사 인근에는 꽈배기 가게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사놓은 꽈배기가 종종 사무실에 놓여 있곤 합니다. 야근 당직을 서며 소설가 윤성희 인터뷰 기사를 미리 쓰고 있던 밤 11시. 야근 중이던 동료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습니다. “지윤아 꽈배기 먹을래?” “어? 나 꽈배기 기사 쓰고 있었는데….”

밤 11시 야근 당직자의 꽈배기는 달콤하다. /황지윤 기자
이야기(story)에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스토리텔러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