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니라 둘…. 지난 9일 완결된 디즈니+ 드라마 ‘하이퍼나이프’에는 엽기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천재적인 수술 실력을 갖췄지만 충동 조절을 못 해 사람을 죽이는 의사 ‘세옥’(박은빈)과 그런 세옥을 내친 스승 ‘덕희’(설경구)다. 덕희 역시 세옥과 다르지 않은 살인마임이 밝혀진다. 이때부터 의학 스릴러는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스승과 제자의 애증 가득한 드라마로 나아간다.
권선징악이나 윤리 같은 현실의 중력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이퍼나이프’는 상반된 반응을 얻으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살인 의사’에 고개를 젓는 시청자도 있었지만, 박수 치는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현실과 드라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재미를 꾸려낸 배우들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사이코 아니라 생각하며 연기”
두 주연배우 몫이 특히 컸다. 최근 만난 두 배우는 캐릭터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고 했다. 배우 설경구는 “덕희 배역이 ‘사이코’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애써 부인하며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사이코’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걸 알지만, 그렇게 여기며 연기했다가는 보는 이들이 인물에게 정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오지도 않을 것이라는 염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배우 박은빈도 “악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연민을 갖지는 않으면서도 시청자에게 인물을 설득시키는 게 과제였다”고 했다.
재미는 정상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두 주인공의 관계에서 나왔다. 아끼는 제자인 세옥을 병원에서 쫓아냈던 스승 덕희가 뒤늦게 자신의 뇌 수술을 해달라고 세옥을 찾으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나중에 가서야 덕희에게 세옥에 대한 깊은 애정을 실현하려는 ‘사이코’다운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설경구는 “덕희와 세옥은 비정상적인 인물이 맞다. 하지만 둘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만큼은 정상과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이 부분에서는 이질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변주를 통해 완성된 덕희 캐릭터
사제 관계를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이끌어간 건 주로 덕희 캐릭터였다. 박은빈은 그 연기를 빈틈없이 받았다. 애드리브로 완성된 장면도 많았다고 한다. 설경구는 “초반 연기를 하다가 8부작까지 가면 지루하겠다는 생각에 변주를 하기로 했다”며 “의사로서는 천재이지만 세옥과 부딪칠 땐 바보 같고 맹한 사람으로 캐릭터를 잡았다”고 했다. ‘돌풍’(넷플릭스)에 이어 두 번째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그는 더욱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보여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무인도의 디바’ 등에서 맑고 선한 역할을 했던 박은빈에게 세옥은 큰 변신이었다. 꾸밈없이 세옥이 되어 마음껏 괴상해졌다. 박은빈은 “세옥을 만나 안 해본 표현들을 하면서 연기 갈증이 해갈된 부분이 있다”면서 그래도 “세옥의 악행이 너무나 확연해 공개 전 ‘많이 응원해 주세요’라고 차마 말을 못 하겠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