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신작 산문집 출간이 임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 내는 첫 책이다. 산문집 제목은 노벨상 수상 강연을 딴 ‘빛과 실’. 한강 문학의 고향 같은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에서 나온다. 이르면 올해 발표하겠다고 한 소설 ‘겨울 3부작’과는 별개 책이다.
◇미발표 시·산문·정원 일기 등 수록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이달 24일 출간 예정인 신작 산문집에 실린 산문 ‘북향 정원’의 일부다. 이번 산문집은 문지의 기획 산문 ‘에크리’ 시리즈의 아홉 번째 편. 작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진행한 노벨상 수상 강연문 ‘빛과 실’을 포함해 미발표 시·산문·정원 일기 등이 담겼다. 2~3년 전부터 기획한 것으로, 그사이 노벨상 수상이 겹치며 내용이 더욱 풍부해진 셈이 됐다.
한강의 새 산문을 고대하는 독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최근 산문으로 한강을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 산문집은 미 아이오와대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을 산문으로 엮은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2003), 이 책의 개정판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2009), 음악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2007) 등 세 권뿐. 그러나 모두 절판이다. 한강의 주요 작품을 수록한 ‘디에센셜 한강’ 뒤에 붙은 8편의 산문이 유일한데, 이 역시 재수록작이다.
◇한강과 문학과지성사의 연
한강은 문지와 인연이 깊다. 1993년 문지가 발간하는 문학 잡지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처음 문단에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한강현’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붉은 닻’을 투고해 당선됐다. 당시 심사위원이 김병익 문학평론가였다. 문지 창간 멤버로 김현·김치수·김주연과 함께 ‘문지의 4K’로 불린다.
출판사 문학동네·창비가 주요 장편 ‘채식주의자’(2007), ‘소년이 온다’(2014), ‘작별하지 않는다’(2021) 등의 판권을 보유하지만, 문지는 초기작 다수와 시집 판권을 갖고 있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1995) 외에도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2002), ‘바람이 분다, 가라’(2010), 소설집 ‘노랑무늬영원’(2012),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2013) 등이 문지 출간작이다.
◇’한강 효과’ 이어지나
산문집 출간 이후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한강 효과’가 다시 이어질지 주목된다. 노벨상 수상 이후 한강의 책 누적 판매 부수는 300만부 안팎으로 추정된다. 작년 10월 10일 이후부터 이달까지 예스24·교보문고·알라딘 등에서만 약 270만부가 팔렸다(전자책 제외).
다만 저자의 뜻에 따라 책 홍보는 최소화하는 분위기다. 출판사와 서점 등 업계 관계자들은 조용히 물밑에서 출간 막바지 작업을 진행했다. 한강은 ‘책을 통해서만 말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출간 이후 별도 간담회나 행사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강은 노벨상 시상식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해외 행사 초청 등도 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영어로 번역·출간되자 일부 해외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최소한의 언론 접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