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트의 쓰케모노 코너. 왼쪽 절반을 김치가 차지하고 있다. /에노모토 야스타카 제공

‘쓰케모노’란 일본의 전통 채소 절임을 말한다. 각종 채소를 소금이나 쌀겨에 절여 만든다. 일본 식당에서는 보통 누카즈케(쌀겨 절임)나 오싱코(가볍게 절인 채소 절임), 다쿠안(단무지) 같은 쓰케모노를 메인 메뉴와 곁들여 준다. 일식에선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라 현지 마트나 백화점에는 꼭 쓰케모노 판매 코너가 있는데, 요즘 상품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쓰케모노보다 김치가 더 많이 진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한식 기획전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김치는 오래전부터 일본 밥상에 침투해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인 90년대까지는 이렇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제1차 한류 붐’ 때부터 일본의 현지 마트에서 김치 판매량이 늘어난 것 같다. 최근 일본 판매관리시스템(POS)의 데이터에 따르면, 쓰케모노 판매량의 상위권은 대부분 김치가 차지했다. 해마다 다소 변동은 있지만, 최근 몇 년간 판매량 상위 품목 20위 중 절반 이상이 김치다. 수요 증가에 따라 일본의 쓰케모노 업체들도 김치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 일본 식품 수요 연구센터의 조사 결과에서도 이제 쓰케모노 분류 중 김치 생산량이 가장 많다고 한다.

사실 일본산 김치 맛은 한국과 꽤 차이가 있다. 원래 일본은 매운 걸 잘 못 먹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한국보다 덜 맵게 김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일본에서 현지화된 김치에 만족할 수 없고, ‘기무치’라고 일본식 발음으로 부르며 야유하기도 한다. 물론 재일 교포가 운영하는 매장에서는 매운 김치를 판매하지만, 그런 제품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에서 직수입한 종가 김치나, 한국의 김치 맛을 살리면서 매운맛이나 산미를 약간 조정한 수입품 비비고 김치도 늘어났다. 이에 더해 ‘일본산 김치’도 여전히 잘 팔리기 때문에 여러 김치가 함께 ‘쓰케모노 코너 매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 마트의 김치 코너만 봐도 다양성의 시대라는 것이 느껴진다. 덕분에 일본에 사는 한국인도, 필자처럼 한국인 입맛에 가까워진 일본인도 살기가 더욱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