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장(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심코 놓치고 지나간 신간, 인터뷰에 담지 않은 후일담, 각종 취재기 등 이모저모. +α를 곁들여 봅니다.
얼마 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봤습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대한민국 신춘문예 페스티벌’이 열렸거든요. 매년 1월 1일 신문사에서 발표하는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들을 무대화하는 연극 축제입니다.
제가 본 공연은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인 송희지 작가의 ‘탐조기(探鳥記)’. 아빠의 옛 남자 연인 ‘훤’를 찾아가는 ‘조’. 둘은 ‘새’를 보며 다시금 삶을 감각합니다. 활자로만 마주했던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무대에 오를지 궁금했습니다.
송희지 작가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풀 썰이 많은데요. 아마 발빠른 문학 독자라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거예요. 2019년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했고, 이미 몇 해 전 첫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파란)을 냈어요. 작년 말에는 시 ‘루주rouge’외 네 편으로 문지문학상을 받아 주목 받는 2002년생 시인입니다.
문지문학상 후보작(책 출간 시점에는 수상작 미발표)이 수록된 ‘시보다 2024’(문학과지성사)에서 송희지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났습니다. ‘루주’와 두 편의 ‘금정포’ 시에 드문드문 밑줄을 그으며 읽었어요.
세 편의 시에선 ‘나’와 ‘형’이 반복해 등장합니다. ‘퀴어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나’와 ‘형’의 관계에서 퀴어함을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주변인 또는 이방인이 되는 방식으로 퀴어함을 드러낸다고 느꼈어요. 단정한 문장으로 세상에 비스듬이 서 있는, 묘한 어긋남을 보여줍니다.
‘나는 조금만 멀리서 주시하다가 이내 형에게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반갑게 알은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형은 계속해서 초조해 보였다. 형은 초조함에 열중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은 초조한 상태가 아니면 견딜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중략) 나는 견딜 수 없이 초조해졌다.’ (‘루주’에서)
‘나는 엉엉 울었는데 나를 지나치는 행인과 상인과 노상 매대 위의 상품 들에 의하여 정갈한 현상으로 취급되었다’(같은 시에서)
‘“탐난다.” 형이 말한다. 금정포의 탄력을 갖고 싶다고. 빼앗고 싶다고. 어린애냐고, 나는 웃는다. 가짜로 웃는다. 형의 눈빛 정말로 저지를 것처럼 흔들리고 있는 까닭이다. “내가 이곳의 주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형이 말하고 “그건 우리가 외지인이기에 가능한 허영이야” 내가 말한다.’ (‘금정포’에서)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향한 이상한 노스탤지어에 젖어드는 것이다. 서정성을 퀴어링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대학로로 돌아와서 - 공연장에 앉았더니 지난 신춘문예 심사 때 생각이 났습니다. 작년 12월 중순 희곡 부문 심사위원인 임선옥 평론가와 오경택 연출가가 조선일보사를 찾아 최종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최종 선정작은 ‘탐조기’. 이견 없이 한 작품으로 뜻이 모아졌습니다. 두 분 모두 “힘이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어떤 작가인지 궁금하다”고 하시더군요.
신춘문예 투고작은 익명으로 심사합니다. 우편 발송 시 봉투 겉면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입하도록 합니다. 심사 단계에서는 봉투와 원고에 번호를 매긴 뒤, 원고만 심사위원에게 전달합니다. 당선작이 정해지면 문학 담당 기자가 수북히 쌓인 봉투 더미에서 같은 번호가 적힌 봉투를 찾고, 거기에 적힌 정보를 보고 당선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봉투에 적힌 이름은 송희지 시인의 본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아 이리저리 온라인 검색을 하다가 ‘앗!’하고 느낌이 왔습니다. 시인에게 당선 소식을 전하기 전에 어느 출판사에 전화해 “이 분이 그 분 맞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송희지 시인은 연극 수업 중이어서 전화를 못 받았다고 합니다.
이번 뉴스레터를 쓰며 시 ‘금정포’를 다시 폈습니다. ‘나’와 ‘형’이 대사를 주고 받더군요. 시이지만, 희곡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에는 차에 치여 바닥에 눌어붙은 ‘새’가 나오더군요. 시인이자 극작가인 송희지의 세계가 어렴풋이 엿보이는 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