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종묘 정전(正殿)이 5년간의 대공사를 끝내고 위용을 드러냈다. 조선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 49위를 모신 사당이자, 우리나라 단일 건물로 가장 긴 건물이다. 전체 길이 101m. 선왕에게 제사 지내는 격식과 검소함을 건축 공간으로 구현해 조선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공사 기간 동안 창덕궁 구 선원전에 임시 봉안됐던 신주도 원래 자리인 종묘 정전으로 복귀했다.
일요일 오후 도심 한복판에서 ‘왕들의 귀환’ 행렬이 펼쳐졌다. 국가유산청은 20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창덕궁 금호문 앞에서 ‘종묘 정전 환안제’를 시작했다. 신주를 종묘 정전으로 다시 옮기는 환안제는 1870년(고종 7년) 이후 155년 만이다. 태평소와 나발, 나각 등 취타대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마 28기와 말 7필, 시민 행렬단 200명을 포함한 1100명이 도심을 행진하는 대장관이 펼쳐졌다.
창덕궁을 출발한 환안(還安·다른 곳으로 옮겼던 신주를 다시 제자리로 모심) 행렬은 광화문, 세종대로, 종로를 거쳐 종묘까지 약 3.5km를 이동했다. 호위 무사, 도가대, 문무백관, 의장대 등이 가마를 에워싸고 길게 이어졌다. 가마 속 주인공은 왕과 왕비의 혼이 깃든 신주 49위. 광화문 월대 옆 잔디밭에서는 풍물놀이, 줄타기, 탈춤, 사자춤 등 전통 연희 공연이 펼쳐졌고, 도심 거리에 모인 시민들과 외국인들은 행렬을 사진에 담으며 동참했다.
환안 행렬은 190년 전 조선왕실의궤를 재현한 것이다. 헌종(재위 1834~1849) 대인 1835~1836년 종묘를 증축한 과정을 정리한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宗廟永寧殿增修都監儀軌)’를 토대로 했다. 궁능유적본부는 “가마를 모두 제작할 수 없어서 장인들이 신여(궁 밖에서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 향용정(제사에 사용하는 향로를 운반하는 가마), 신연(궁 안에서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 각각 1대를 제작하고, 나머지는 기존 가마를 수리하고 빌려 전국에서 28기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수 공사를 마친 종묘 정전에서 무사 환안을 하늘과 땅에 고하는 의식인 고유제(告由祭)가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봉행으로 열렸다. 120명의 제관은 엄숙한 의식으로 신주가 제자리에 돌아왔음을 알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종묘 정전 외벽을 배경으로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지면서 무용수 60명의 특별 공연이 대미를 장식했다.
종묘 정전은 1395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뒤 600년 넘게 왕실 제례가 열린 곳이다. 정면 19칸, 측면 3칸으로 한국 전통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꼽힌다. 직선을 길게 그은 독특한 형태가 주는 장엄한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국보로 지정됐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건물이 노후화돼 기와와 월대 일부가 파손되는 등 안전 문제가 확인되면서 2020년부터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유네스코 등재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연다. 24일부터 5월 2일까지 종묘제례악 야간 공연이 펼쳐지고, 21일부터 6월 16일까지 종묘에서 ‘삼가 모시는 공간, 종묘’ 특별전을 연다. 조선 시대 왕비가 참여했던 국가 의례를 엿볼 수 있는 재현 행사도 26일부터 5월 2일까지 선보인다. 조선 왕실 제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종묘대제는 5월 4일 6년 만에 일반에게 공개된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종묘 수리는 우리 기술로 옛 장인의 손길을 되살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한 시간이었다”고 했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종묘가 우리 삶 속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하며 그 가치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주 49위
종묘 정전은 조선 초 건립 당시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익조·도조·환조) 신위를 모셨고, 그 뒤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 등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 됐다. 현재 방 19칸에 태조부터 순종까지 국왕 19위와 왕비(계비 포함) 30위가 있다. 종묘의 부속 건물인 영녕전(永寧殿)에는 정전에서 옮긴 국왕 15위와 왕비 17위 및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이방자 여사)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