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장남은 커밍아웃(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힘)한 게이다. 한국에서 어떻게 이 사실을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제게 책을 던질 수도 있다.”
배우 윤여정(78)이 쉽게 밝히기 어려운 개인사를 공개하며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윤여정은 지난 18일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 ‘결혼피로연‘의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제 개인사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밝혔다. 그는 주간지 피플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인터뷰에서 “제 장남은 2000년에 커밍아웃했고, 뉴욕에서 게이 결혼이 합법화됐을 때(2011년 6월) 아들을 위해 결혼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선 비밀이라 온 가족이 뉴욕에 가서 식을 열었다”며 “지금은 아들보다 사위(아들의 남편)가 더 좋다”고 말했다.
윤여정의 두 아들은 조얼(50)씨와 조늘(43)씨다. 두 사람은 그가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을 때도 언급됐다. 당시 윤여정은 무대에 올라 “제가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 준 두 아들에게 감사한다”며 “얼과 늘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며 트로피를 높이 들어 보였다. 수상 소감에 등장한 조얼씨가 이번 인터뷰에서 밝힌 장남이다.
윤여정의 개인사는 영화 ‘결혼피로연’ 각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결혼피로연‘은 영주권을 얻기 위해 여성과 위장 결혼하려는 게이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로, 윤여정은 게이 주인공 민(한기찬)의 할머니로 출연한다. 이안 감독의 대만 영화(1993)를 리메이크했으며, 지난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돼 호평을 받았다. 각본을 쓰고 감독한 앤드루 안(39)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 역시 성 정체성을 공개한 동성애자다. 제작 과정에서 윤여정의 이야기를 들은 안 감독은 손자 민과 할머니가 대화하는 장면에 윤여정이 아들과 실제로 나눈 대화를 살렸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너는 내 손자”라는 할머니의 대사는 장남의 고백을 들은 윤여정의 말이기도 하다.
윤여정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동성애 자녀를 둔 부모가 어려움에 처하기 쉽다”며 “한국이 마음을 열고 깨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차남 조늘씨를 ‘윤여정의 매니저‘라고 표현하며 조늘씨가 “한국에서도 이제는 동성애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명 인사들은 성 정체성 공개에 예전보다 과감해지고 있다. 하이브의 글로벌 걸그룹인 캣츠아이의 멤버 라라(20)는 지난달 팬 커뮤니티에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히며 “제 성 정체성은 저의 일부”라고 했다. 공개 석상에서 동성 파트너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 박수를 받기도 한다. 배우 조디 포스터(63)는 지난 1월 골든글로브 TV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에서 7세 연하 동성 아내 알렉산드라 헤디슨을 두고 “제 인생의 사랑인 알렉스에게 영원히 감사한다”고 말했다.
연예계뿐 아니라 학계와 기업계 유명 인사들도 커밍아웃 지지가 늘고 있다. 21세 때 커밍아웃한 유발 하라리(49)는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16세 때 커밍아웃해야 할 걸 너무 늦게 했다”고 했다. 또 미국 CBS의 인터뷰 프로그램인 ’60분‘에서는 “제 남편을 이스라엘 최초의 게이 데이팅 어플에서 만났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2011년 애플 수장에 오를 때부터 게이설이 무성했던 팀 쿡(65) 애플 CEO는 2014년 ‘블룸버그 비즈니스’ 기고문에서 처음으로 성 정체성을 밝히며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며, 신이 제게 준 선물 중 하나로 생각한다”고 썼다. 그는 커밍아웃과 더불어 게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등 동성애자 권리 보호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