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나 자녀 교육 때문에 주말에만 함께 생활하는 ‘주말부부’는 적지 않다. 하지만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단원인 임채문(30)씨와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 부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설민경(34)씨 부부는 차원이 다르다. 이 부부는 20일 인터뷰에서 “비행기를 타고서 예닐곱 시간씩 걸려서 영국과 독일을 오가는 우리는 ‘주말부부’가 아니라 ‘월말 부부’”라며 웃었다. 해외 명문 악단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단원은 적지 않지만, 다른 국가의 오케스트라에 재직하는 한국인 부부 단원은 극히 드문 경우다. 남편 임씨가 올해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의 협연자로 선정되자, 아내 설씨도 휴가를 내고 방한(訪韓)해서 관객으로 남편을 응원했다.
이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공부한 동문(同門). 하지만 정작 학창 시절에는 만난 일이 없었다.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난 아내 설씨는 예고 1학년 재학 중에 한예종에 입학한 뒤 2012년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다. 반면 초등생 때 취미반으로 더블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한 남편 임씨는 아내가 졸업하고 2년 뒤에 한예종에 입학했다. 아내가 연주하는 독일 밤베르크에서 2023년 1월 이들은 처음 만났다. 당시 독일 뮌헨에서 단원 생활을 하던 임씨는 “밤베르크 심포니에서 연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아내를 처음 보았다. 그 뒤 독일 고속 열차(ICE)를 타고서 뮌헨과 밤베르크를 오가며 데이트를 했다”고 말했다. 연주 일정 때문에 딱 40분 만난 뒤 돌아간 적도 있다고 했다. 결국 지난해 8월 결혼식을 올렸다.
연주자답게 이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준 것도 연주 활동이었다. 지난 2023년 6월에는 해외 악단의 전현직 단원들이 중심이 된 ‘발트 앙상블’ 단원으로 함께 참여해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쇼팽 협주곡들을 협연했다. 지난해 5월에도 부부는 경기 필하모닉의 객원 단원으로 참가했다. 남편 임씨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내에 대해 “언제나 정확한 연주를 위해서 꼼꼼하게 연습한다”고 칭찬했다. 아내는 더블베이스 연주자인 남편에 대해 “음악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집중할 줄 안다”고 말했다.
남편 임씨가 런던 심포니 단원으로 임용된 뒤 ‘월말 부부’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남편 임씨는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고 독일에 내린 뒤 기차를 갈아타면 예닐곱 시간씩 걸린다. 물리적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그래서 더욱 애틋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남편 임씨는 지난해 런던 심포니의 내한 공연 때 참가했고, 아내 설씨는 2023년에 이어서 5~6월 밤베르크 심포니의 내한 공연에도 합류한다. 이들의 악단이 내한 공연을 할 때는 배우자도 휴가를 내고 함께 방한하기도 한다.
아내 설씨는 남편의 런던 심포니에 대해서 “조직력이 탄탄하고 특히 금관과 더블베이스가 굵고 시원시원한 소리를 낸다”고 평했다. 남편 임씨는 아내의 밤베르크 심포니에 대해 “독일 특유의 중후하면서도 묵직한 소리 세계를 추구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같은 도시에서 함께 연주 생활을 하는 것이 이 부부의 꿈이다. 이들은 “지금은 해외에서도 한국인 단원이 없는 오케스트라를 찾기 힘들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인 연주자가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뿌리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