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성은 일제 때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하나였다. 한반도는 물론 만주, 내몽고, 화북지방까지 30여차례 채집여행을 다니며 곤충 연구의 영역을 확대했다. 광복후엔 '곤충기'를 펴내 곤충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곤충을 소개하는강연, 연구활동을 활발히 펼처 '한국의 파브르'란 별명까지 얻었다./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과학자의 창에서 밝아오는 아름다운 새벽! 이곳은 만호장안(萬戶長安, 집이 아주 많은 서울)이면서도 동쪽으로 멀리 떨어져있어 주위 환경부터가 장래의 일꾼들이 깃들기에 알맞아 보이는 청량리 경성제국대학 예과의 묵중한 벽돌집 교사의 한 모퉁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동식물강의준비실이라는 이름이 걸려있는 방에서 10년을 하루같이 세상사람들이 누구나 무심히 집어치우는 벌레를 동무로 아니 생명으로 자나깨나 들여다 보고 앉아계신 청년 곤충학자 조복성(32)씨다.’(곤충세계의 상춘보, 조선일보 1939년 1월5일)

1939년초 기자가 경성제대 연구실을 찾았다. 취재대상은 곤충학자 조복성이었다. 교수는커녕 일본인 교수 연구를 돕는 조수(助手)신분이었다.평양고보 사범과를 나와 보통학교 교사를 지낸 경력이 전부인 그를 주목한 이유는 뭘까.

조선일보 1939년 1월5일자에 실린 곤충학자 조복성 탐방기. 경성제대 예과 조수 신분이었지만 그는 당대의 대표적 조선인 과학자였다. 조선은 물론 만주, 내몽골, 화북지방까지 채집 여행을 다니며 곤충을 채집했다.

◇천연색 세밀화로 빛난 ‘조선의 접류’

기사에 따르면, 그는 일본인 연구자 도이 히로노부(土居寬暢)와 경성제대 예과 모리 타메조(森爲三)교수와 ‘조선의 접류(蝶類)‘라는 책을 공저해 학계에 커다란 공적을 세웠다. 1934년 출판된 ’조선의 접류‘는 조선산 나비 211종을 담은 도감으로,나비 분류목록과 지리적 분포에 대한 해설을 수록했다.

이 책의 진가는 나비 그림 284점에 있었다. 각종 나비의 특징을 생생하게 묘사한 천연색 그림 덕분에 출판사가 출간을 결정했다고 밝힐 만큼 호평을 받았다. 이 그림을 맡아 그린 이가 조복성이었다.

1934년 일본인 연구자 둘과 함께 출간한 나비도감 '원색 조선의 접류'. 조복성은 수많은 현장 답사를 통해 축적한 나비의 특징을 포착해 생생하고 화려한 색채의 세밀화를 그렸다. 이 책은 그가 주류 학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조선의 접류' 앞부분에 실린 조복성의 나비 세밀화.

◇"정조관념 굳은 곤충의 미덕, 사람보다 낫다"

조복성은 연구실을 찾은 기자에게 ‘버러지’로 하찮게 취급하던 곤충이 사람보다 오히려 나은 미덕(美德)을 가졌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벌레 같은 인생이라는 형용사가 말하듯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지천한 곤충의 세계에도 알고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혼자 뽐내는 사람들이 따르지도 못할 미덕이 많이 숨어 있다’

‘나비든지 하누소(하늘소)든지 매미,잠자리 같은 곤충은 대부분이 유충으로 1년 혹은 긴 것은 7,8년이라는 세월을 땅속에서 혹은 나무껍질틈에서 지나고 나서 성충이 되어 나와서는 한번 교미하고는 곧 죽습니다. 그러므로 곤충의 생존의의는 전혀 종족보존에만 있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없습니다.

교미도 단 한번에 전혀 씨를 남기자는 본능에서 나온 것이므로 곤충의 성(性)생활이야말로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고결하고 정조관념이 굳은 것이라고 하여야될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 사람이 곤충에게 배워야될 점이 아닐까요?’(곤충세계의 상춘보, 조선일보 1939년 1월5일)

곤충과 인간 사회를 비교해서 설명하는 그의 방식은 대중 강연이나 ‘곤충기’같은 저술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울릉도산 나비로 첫 논문 발표

조복성은 1929년 일본인 연구자들이 주도한 조선박물학회잡지에 울릉도 나비를 연구한 ‘울릉도산 인시목(鱗翅目)‘이란 논문을 발표했다.한해전 7월 울릉도에 열흘간 채집여행을 떠나 수집한 나비 25종 200개체를 수집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었다.이 글은 조복성의 첫 학술논문이자, 울릉도 곤충에 관한 세계 최초의 논문이었다.

조복성은 울릉도 답사 때 하늘소 7종 100여개체도 수집했는데,이중 울릉도에만 서식하는 하늘소에 ‘울릉도 하늘소’란 이름을 붙여줬다. ‘하늘소’는 이후 조복성의 주요 연구 테마가 됐다.그는 전국의 산야(山野)를 발로 뛰며 곤충을 채집하면서 한반도의 곤충을 연구한 현장 전문가였다.

◇고보 신입생때부터 곤충 채집 매달려

평양 출신인 조복성(1905~1971)은 평양고보에 들어간 1919년부터 상급생을 따라 곤충 채집을 다녔다.포충망을 들고 나비나 잠자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게 당시 유행이었다. 조복성은 이 학교 박물교사인 도이 히로노부로부터 곤충 채집과 분류법을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곤충학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조선산 곤충이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욕을 더 자극했던 모양이다.1923년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사범과를 1년 더 다닌 후 해주 제2보통학교 훈도가 됐다.

이 때 생물학 강좌 연사로 온 모리 타메조가 조복성이 수집한 희귀 곤충표본을 보고,그를 주목했다.경성제대 예과 교수가 된 모리는 총독부 학무국에 부탁, 조복성을 경성의 보통학교 교사로 전근하도록 도왔다. 조복성은 모리 교수와 채집, 연구를 함께 했고, 1930년 모리가 주임으로 있던 경성제대 예과 박물실 조수로 들어가게 됐다.마음껏 곤충연구에만 몰두할 여건을 갖춘 것이다.

◇만주, 내몽골, 화북지방까지 채집여행

1930년~1941년 조복성은 52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부분은 모리 타메조, 도이 히로노부와 공저였다. 일본인 학계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연구성과를 쌓아올린 당시 과학계의 대표적 사례였다.

일본인 연구자가 90%가 넘는 조선박물학회에 가입했고, 모리 교수와 함께 조선은 물론, 만주, 내몽고, 화북지방까지 30여차례 채집 여행을 떠났다. ‘개마암고운부전나비’ ‘서울범하늘소’ ‘관모산 지옥나비’처럼 그가 이름을 붙인 나비도 여러 종이다.

1941년 경성제대 의학부 조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독립적 연구자로 거듭났다.일본의 중국 침략이 진행되면서 1942년부터 난징박물관, 항저우 시후박물관 특파원연구원으로 일하며 연구 지역과 대상을 넓혔다.

◇조선박물연구회, ‘과학조선’ 운동 참여

일본인 주류 학계에서 자리를 잡고도 조선인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쌓는데 앞장섰다. 1933년 조선인으로만 구성된 조선박물연구회에 참여했다.조류 연구자 원홍구,어류 연구자 정문기와 함께 동물부 주축을 이뤘다.

이듬해 김용관이 주도한 ‘과학조선’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캠페인을 주도한 과학지식보급회 발기인이자 과학 대중보급서인 ‘과학독본’편찬위원으로 나섰다.1934년 조선박물연구회와 조선일보가 주최한 ‘조선박물전람회’에도 자기가 채집한 장수하늘소 등 곤충표본을 출품했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교수인 안동혁이 1938년초 과학계를 회고한 글에서 ‘우선 박물학 관계의 조복성,도봉섭,석주명,정태현 제씨의 꾸준한 노력에 탄복지 않을 수없다. 필자는 이 방면에 문외한이나 조선박물회지(에 발표하는 조선인 논문 대다수)가 거의 전기(前記)의 제씨의 고심한 결정(結晶)인 것과 근자 조선 박물학계의 대저가 다 제씨의 소산임을 볼 때 비상한 감흥을 느끼는 바이다' (최근 조선과학계 동향, 조선일보 1938년 1월6일)라고 썼다. 당대 대표적 생물학자 명단의 앞자리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한국의 파브르’

광복 후 그의 활약은 더 빛을 발했다.1945년 11월 국립과학박물관 초대 관장이 돼 5년 반 재임했다. 조선생물학회 창립과 함께 부회장을 맡았다. 1948년 ‘곤충기’ ‘곤충이야기’를 잇달아 펴내면서 ‘한국의 파브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곤충의 생태와 인간 사회를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쓴 그의 저작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6.25 이후 성균관대를 거쳐 고려대 생물학과로 옮겨 1963년 고려대 부설 한국곤충연구소를 세워 초대 소장을 맡았다.1971년 정년 퇴임하자마자 지병으로 타계했다.그는 한국 생물학자 중 가장 많은 지역을 답사하고, 가장 다양한 생물을 채집해 종합, 정리한 연구자로 꼽힌다.

 ◇참고자료

森爲三, 土居寬暢, 趙福成 공저, 原色 조선의 접류, 조선인쇄, 1934

김성원, 식민지 시기 조선인 박물학자 성장의 맥락: 곤충학자 조복성의 사례, 한국과학사학회지 제30권제2호, 2008

김근배, 이은경, 선유정 편저,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세로북스, 2024

조선 뉴스라이브러리 100 바로가기

※‘기사보기’와 ‘뉴스 라이브러리 바로가기’ 클릭은 조선닷컴에서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