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유주얼서스펙트'(2025). 종이에 연필. 사진촬영 손미현. /P21

전시장 벽면에 동글동글한 여성 얼굴이 가득 차 있다. 하나같이 검은 머리망으로 머리를 감쌌고, 눈을 동그랗게 뜨거나 옆눈을 흘기고 있다. 제목 ‘유주얼 서스펙트’. 유력한 용의자란 뜻이다. 작가는 “고객의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오자 여성 노동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너야?’ 하고 의심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객 민원이 제기되면 CCTV를 확인해 ‘머리카락을 흘린 범인’을 찾아내는 현실을 꼬집었다.

신민, '유주얼서스펙트-민정'(2025). 종이에 혼합재료. 사진촬영 안천호. /P21

서울 용산 P21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신민(40)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은 저임금 고강도 서비스직에 밀집된 여성 노동자의 애환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10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한 작가에게 검은 머리망은 “자본주의가 여성 노동자를 통제하는 시스템의 상징”이다. 그는 “머리카락 한 올 떨어지지 않게 머리를 감싸고 나면 개인은 사라지고 한 명의 노동자가 탄생한다”며 “소비자들도 머리망을 쓴 사람에게는 ‘내가 서비스나 사과를 요구해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인간은 털 하나 없이 멸균될 수는 없는 존재인데, 인간 노동자의 흔적을 왜 이렇게 혐오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신민 작가가 전시 작품 옆에서 작품과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작가는 "제가 그리는 모든 여성의 얼굴은 제 자화상"이라고 했다. /허윤희 기자
신민, '음료 나가기 전에 이물 체크 또 체크'(2025). 종이에 연필,색연필. 사진촬영 안천호. /P21

종이를 주재료로 작업하는 그는 “잘 찢기고 지워지기 쉽지만 약해서 더 생명력이 느껴지는 소재”라며 “제가 고급 재료나 화구를 쓰면 기가 죽고 손이 떨린다”며 웃었다. 불과 2년 전까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었다는 작가는 올해 2월 처음으로 상업화랑인 P21과 소속 계약을 맺었다. 지난달 아트바젤 홍콩에서 ‘MGM 디스커버리스 아트 어워즈’ 수상의 영예를 안은 직후 열리는 첫 개인전이다. 5월 17일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