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세계화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대통령 신년사와 함께 시작된 1995년, 한국 문화계에는 대변혁이 일어났다. K팝과 K콘텐츠 업계의 맏형 격인 SM엔터테인먼트와 CJ ENM이 첫발을 내디뎠고, 케이블TV가 출범하면서 ‘한국의 MTV’라 불린 엠넷, 영화 전문 채널 OCN 등이 개국했다.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한 드라마 ‘모래시계’, 한국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명성황후’, 한국 인디 음악도 모두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1995년에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무르익었던 문화·예술 욕구가 폭발했다”면서 “K팝과 영상 콘텐츠 산업의 기틀이 마련됐고, 윈도우95 등장으로 인터넷 문화도 싹트면서 한국 문화계에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고 평했다.
1995년 4월 28일, 제일제당(CJ)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손잡고 당시 신생 스튜디오였던 드림웍스에 3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2300억원)를 투자하며 영화 사업을 시작했다. 이날 본지 기사는 “제일제당은 앞으로 영상 소프트 사업의 아시아 제패를 꿈꾸고 있다”고 기록했다. 당시 한국 영화 편당 제작비는 5억원 남짓. 제일제당에 신설된 멀티미디어사업부(CJ ENM의 전신)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한국 영화판에 할리우드에서 전수받은 제작·배급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때부터 추진해 1998년 개관한 ‘CGV 강변11’이 멀티플렉스 극장 시대를 열었고,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JSA’(2000)가 잇따라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방송계에서는 지상파 독점 체제가 깨지고 케이블 TV 시대가 열렸다. 엠넷·OCN·투니버스 등 케이블 방송국은 모두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음악 전문 채널로 시작한 엠넷이 종일 뮤직비디오를 틀면서 가요계에서 ‘듣는 음악’만큼 ‘보는 음악’이 중요해졌다. 케이블 채널을 중심으로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었고, 2000년대 들어선 드라마 명가 tvN이 개국했다. KBS 출신의 유상원 스튜디오 드래곤 기획제작사업부장은 “지상파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던 PD들이 케이블 채널로 대거 이탈하면서 ‘미생’ PD 등 숨은 보석이 발굴됐다”면서 “케이블 드라마가 지상파에선 할 수 없었던 과감한 도전을 거듭하면서 한국 드라마를 질적으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1995년은 K팝에서도 중요한 해였다. 국내 최초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만든 음반 기획사 SM이 2월 14일 창립했고, 이듬해 아이돌 1세대 그룹 H.O.T, S.E.S 등을 줄줄이 선보였다. 1995년 4월 홍대 인근에선 한국 인디 음악이 태동했다. 그해 4월 5일 홍대 클럽 ‘드럭’에서 열린 커트 코베인(밴드 너바나 보컬) 1주기 추모 공연은 국내 인디 밴드들이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서기 시작한 기점으로 여겨진다.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억압된 사회 분위기에 눌려 있었던 문화적 욕구가 분출되고, 민중 가수로 쏠렸던 시선이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던 시기”라고 했다.
1995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문가들은 당시 인구 변화에 주목했다. 당시 청년 인구(19~34세)는 약 1377만명으로 역대 최다 수준이었고, 베이비부머가 부모가 되면서 자식 세대는 경제적 여유까지 갖췄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이때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문화를 향유할 인구층이 탄탄했던 덕분”이라면서 “최근 들어 1990년대에 향수를 느끼는 레트로 현상이 계속되는 것도 이 시대 문화를 추억하고 공유하는 인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PC 통신 발전과 함께 활발해진 동호회 모임도 영향을 미쳤다. 김작가 대중문화 평론가는 “1995년은 하이텔·천리안 등 인터넷 동호회가 활발하던 시점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모임이 이곳에서 태동했고, 그 파급력이 상당했던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