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북 정읍시에서 12㎞ 들어간 농촌에서 태어났다. 내 고향에서는 어머니를 ‘어매’라 불렀다. 읍내 중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은 어머니를 어매라고 부른다고 놀렸다.
같은 전북인데도 ‘어머니’라는 호칭은 다양했다. 고창에서 태어난 조카는 ‘어무이’라 부르고, 영광에서 태어난 올케는 ‘어머이’라고 불렀다. ‘오매’도 있다. 제주에서는 어머니를 ‘어멍’이라 부른다고 한다. 아기가 첫 말을 배울 때 ‘엄, 엄’ 한다는데, 그때 아기 엄마들이 ‘어매’ 또는 ‘엄마’라고 들려주어 각인되지 않았을까 싶다. 송아지가 엄마를 찾을 땐 ‘음매’ 소리를 내고, 아기염소도 ‘음매애’ 한다. ‘ㅇ’이나 ‘ㅁ’처럼 부드러운 자음을 먼저 발음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전라도에서 ‘어매’는 감탄사로도 사용된다. 도시에 살던 조카들이 와도 어머니는 “어매어매 내 새끼들 왔는가” 하고 안아주셨다. 고구마, 감자를 캐다가도 숭얼숭얼 매달린 감자를 보면서 “어매 실한 거”라고 하고, 강아지가 새끼를 낳고 돼지가 새끼를 낳아도 “니 새끼 좀 보그라 어매 이쁜 것” 하며 어미를 칭찬했다. 그뿐인가. ‘어매, 좋다’ ‘어매, 시원하다’ 등등 어매를 넣어 애정이 듬뿍 들어찬 사랑 표현을 했다.
어린 시절 단짝 순이의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가는 길에, 상여를 메고 앞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면서 부른 후렴구가 있다. ‘어너어너 어니리 넘차 어하너’. 보내는 이의 애간장이 다 녹을 정도로 슬펐다. 순이는 쓰러질 듯이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으면서 “어매! 어매!” 부르며 통곡했다. 동네 사람들은 눈물을 훔치며 전송했다. 상주가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다시 만나자는 뜻이란다. 나는 가끔 어매가 보고 싶을 때 나훈아의 ‘어매’를 부른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부르다가 끝내 울고 만다. 하늘에 계신 어매요!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