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RG’ ‘GA-5’ ‘Aㅏ’ ‘ㄴㄴ’ ‘딥잠’ ‘자만추’ ‘시엄빠’ ‘롸?’…

영어 알파벳과 한글 자모자를 요상하게 섞거나 과도하게 줄여 의미를 알 수 없게 만든 단어들. 모두 올해 지상파 등 예능 프로그램 방송 화면에 붙은 자막이다. 주로 젊은 사람들 사이 쓰이는 유행어나 인터넷 ‘밈(meme)’에서 따왔다.

지난 9월 12일 MBC 예능프로그램‘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 아니?‘ 뼈’야”라는 의미를‘노우 THE 뼈’라는 자막으로 표현했다. /MBC

‘RGRG(알지 알지)’처럼 소리 내 읽어보면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단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알파벳 ‘A’와 한글 모음 ‘ㅏ’를 합쳐 ‘아’로 소리 나도록 한 자막, ‘GA-5(가오)’처럼 일본어에서 유래한 속어를 다시 한번 알 수 없게 변형한 단어, 아니라는 뜻의 영어 ‘No No(노 노)’를 줄여 ‘ㄴㄴ’으로 표기한 인터넷 용어들이 TV 화면에 난무한다. 푹 잔다는 뜻의 ‘딥잠’은 영어 단어 ‘Deep(깊은)’과 ‘잠’이란 단어를 합쳤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시엄빠(시부모님)’처럼 과도하게 줄인 단어들도 있다. ‘롸?’처럼 ‘당황스럽다’는 뜻의 감탄사는 인터넷 밈에서 유래해 세대 간 소통을 어렵게 한다.

의사소통을 해치는 자막들을 막기 위해 정부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따로 두고 방송언어 사용 실태를 방송 평가에 반영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지난 10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가 ‘노우 The 뼈’ ‘아이크은랩벋아돈노더ㄹㄹㄹ랩’, ‘Pa스Ta’, ‘허(oOo)엌’ ‘짜치니까(?!?!)’ 등을 사용한 MBC ‘놀면 뭐하니' 등 7개 프로그램에 대해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하자 방송 종사자들 반발이 컸다.

한국PD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현실에서 사용하는 살아있는 말들을 배제한 채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느냐”고 했다. 차별 언어와 혐오 표현은 강력히 규제해야 하지만 살아있는 일상 언어를 방송에 내보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방심위 회의에 참석한 KBS 관계자는 “젊은 세대들 언어도 수용을 해줘야 소통이 될 수 있다고 여겨 가끔 선을 넘어볼까 생각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방송사가 심의부를 두고 자막의 맞춤법 등을 감수하고 있지만, 24시간 확인하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예능 프로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막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대부분 출처가 불명확한 조어들이거나 억지로 만든 표현들이다. 웃음 대신 불쾌감만 자아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종합편성 채널 PD는 “최근엔 젊은 세대들이 유튜브 등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 자막이 재미있어야 화제성도 올라간다고 본다. 맞춤법보다는 재미를 위주로 자막을 만드는 게 현실”이라며 “제작진이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는 점엔 공감한다. 유머와 올바른 한글을 둘 다 잡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