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마음에 안개 낀 듯 아련해지는 기분이었어. 눈물마저 핑 돌았지. 조선일보의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 ‘고래구멍(아궁이의 충남 방언)’이라는 말을 만난 순간. 향수가 듬뿍 배인 말, 들어본 지 오래된 흙냄새 배인 말이지.
공주의 금강가에 위치한 우리 마을에선 고래구녁이라고도 했어. 고래구멍에 불을 지펴 방을 덥혔고 음식을 만들었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집 안에 훈기가 돌았고 마음까지 덥혀 주었어. 새벽녘 차디찬 냉기가 등으로 스미면 엄마는 고래구멍에 불을 지폈어. 등이 따끈따끈해지면 어느새 포옥 잠들곤 했지. 그 새벽잠이 어찌나 달고 혼곤하던지.
어느 날 우리 집 강아지가 사라졌어. 모두들 궁금해했지만 며칠째 강아지는 보이질 않았어. 저마다 바빠서 잠시 강아지를 잊고 있던 날이었을 거야. 강아지가 불쑥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어.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듯 식구들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꾀죄죄해 더 쪼끄만해 보이는 모습에 웃음부터 터져 나왔지. 추위 피해 고래구멍으로 기어들었다가 그만 길을 잃었던 게지. 길고 어두운 고래구멍에서 출구를 못 찾아 헤맸을 강아지. 마침내 출구 찾아 나온 제가 대견했던지 환한 얼굴 보이던 그날의 강아지 모습을 지금도 그릴 것 같아.
이런 일도 기억나네. 며칠째 난 설사를 했어. 뒷간으로 내달리고 또 내달리느라 정신이 없었어. 엄마는 고래구멍 천장에 매달린 그을음을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 소금 섞어 내밀었지. 탐스러운 삶은 달걀 세 알과 함께. 짭짜름한 그을음에 찍어 먹던 달걀 세 알, 황홀한 맛이었어. 성장해 가며 고래구멍에 불을 지필 일이 많아졌어. 때로 밥을 지었고 여물을 쑤고, 불을 땔 때면 바닥에 철퍼덕 앉아 고래구멍 벽에 두 다리를 걸쳐 놓았지. 벌겋게 얼굴을 달구던 열기도 좋았어.
까마득히 잊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래구멍이란 말이 어찌 반갑지 않았겠어. 유치원 다니던 딸아이가 어버이날 “엄마, 아빠 오래 오래 사세요” 하며 써보낸 빛바랜 카드를 우연히 발견한 날처럼. 저녁이면 열린 부엌문 사이로 지는 해가 나무청까지 깊이 들어와 그을음으로 새카맣던 부엌 천정까지 환했어. 그때 서녘 하늘을 물들이던 진홍빛 노을. 눈물 묻어 나오는 그리움의 또 다른 말, 고래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