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세계가 ‘정용진 소주’라 불리던 제주소주를 인수 5년 만에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신세계는 지난 2016년 제주 향토 기업인 제주소주를 190억원에 이마트 자회사로 인수했다. 이듬해 ‘푸른밤’ 소주를 출시하며 소주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제주 화산 암반수로 만든 깨끗한 소주’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은 고작 0.2%. 이마트는 제주소주에 67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영업손실액은 2016년 19억원에서 2019년 141억원까지 불어났다.
#2: 제주맥주가 수제맥주 업계 첫 코스닥 상장사가 된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25일 제주맥주의 상장예비심사를 승인했다. 이 심사는 본격적인 기업공개에 앞서 거래소로부터 상장 자격을 평가받는 단계다. 제주맥주는 2015년 미국 유명 수제맥주 브루클린과 합작으로 설립됐다. 2018년 ‘제주 위트 에일’을 시작으로 ‘제주 펠롱 에일’ ‘제주 슬라이스’ 등을 잇따라 출시하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연 매출 320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제주도에 기반을 둔 두 주류업체의 운명은 왜 이토록 극명하게 갈렸을까.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신세계가 소주 시장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고 했다. “신세계는 이마트, 이마트 에브리데이, 이마트24 등 자사 유통채널을 동원하면 쉽게 시장점유율(MS)을 높일 수 있으리라 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가정에서 소비되는 소주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소주는 식당·술집 등 유흥시장에서 대부분 소비되죠. 업소와 업소에 소주를 납품하는 도매업체에 대한 영업력이 핵심인데, 신세계는 이런 쪽의 경험이나 노하우는 없잖아요.”(주류업계 마케팅 담당자 A씨)
“소주업계에는 ‘MS(시장점유율) 1% 올리려면 100억원이 든다’는 말이 있어요. 제주소주는 제주도 내에서도 MS가 10%가 채 되지 않았어요. 신세계에서 670억을 투자했다는데, 1000억 들였어도 전국 MS 1%로도 끌어올리기 힘들었을 거예요.”(소주업계 B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외식·유흥업계가 유례를 찾기 힘든 침체에 빠지면서 신세계의 제주소주는 더욱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제주맥주에 코로나는 오히려 호재가 됐다. 홈술·혼술 문화가 확산되던 중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가정 주류 시장이 커졌다. 수제맥주는 유흥 시장보다 가정 시장 비중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2019년 1월부터 맥주세 기준이 종가세(가격)에서 종량제(용량)로 바뀌면서 수제맥주 출고가가 인하됐다. 이에 따라 편의점 등에서 ‘4캔 1만원’ 등 할인 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제주맥주는 수제맥주 업계 최초로 국내 5대 편의점에 입성했다. 덕분에 지난해 가정 채널 매출이 약 3배 증가했다. 유흥 채널 매출도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1.3배가량 증가하는 등 모든 채널에서 선전했다.
‘청정 제주에서 생산하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얼마나 잘 살렸는지 여부도 두 회사의 성패를 갈랐다. “제주맥주는 브랜딩을 정말 잘했어요. 제주도라는 지역적 특성을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감성으로 살렸죠. 이름과 패키징에서 명확하게 제주도 맥주임이 드러나게 했죠. 양조장은 제주도 여행 명소가 될 만큼 멋지게 만들었고요. ‘제주 한 달 살기 지원 프로젝트’라는 기획도 참신했고, 서울 연남동에서 열었던 팝업스토어도 화제가 됐죠.”(맥주업계 홍보 담당자 C씨)
반면 제주소주는 브랜딩에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신세계가 인수한 제주소주의 새 브랜드가 ‘푸른밤’인데, 그 이름엔 제주가 드러나지 않아요. 제주도에 가도 잘 보이지 않죠. 어디서 어떻게 만드는 지 알 수 없는 ‘듣보잡’ 소주를 누가 마시겠어요?”(주류업계 관계자 D씨)
제주소주는 푸른밤을 16.9도와 20.1도 두 가지로 내놨는데, 이를 포스터에 설명하면서 ‘짧은 밤’(16.9도)과 ‘긴 밤’(20.1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표현이 성매매 업소에서 사용하는 은어였던 것. 제주소주는 ‘성매매 은어로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성매매 은어를 공식적인 제품 구분법으로 사용하다니 놀랍다’ ‘성매매 은어인 줄 몰랐다니 더 놀랍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