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가 등장하는 영화 '람보2'의 한 장면./트라이스타 픽처스

주말, 재미있는 영화가 너무 없어서 ‘람보2’를 보았다. 1편과 3편은 이미 봤기에 의무감에 선택했다. 3편은 1989년 겨울, 중학교 1학년 때 단체 관람으로 보았는데 온갖 폭파 장면만 기억한다. 1편은 재작년쯤 뒤늦게 보았는데 놀랍게도 액션 영화가 아니었다. 베트남전에서 국가에 충성했다고 믿은 특수부대원 존 람보(실베스터 스탤론)는 귀국 후 적응하지 못한다.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됐으며 조국에서도 살인자라 오명을 누리니 안팎으로 부대낀다. 결국 분노가 폭발한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1편은 나름 심오했으나 2·3편은 우스꽝스럽다. 소련과 대립각을 세우는 미국의 시각이 프로파간다처럼 노골적으로 배어 있기 때문이다. 1편의 범죄로 감옥에 수감된 람보에게 그가 믿고 따르던 지휘관 트라우트만(리처드 크레나) 대령이 찾아온다. 사면을 대가로 아직도 베트남에 잡혀 있는 전쟁 포로들의 동정을 파악해달라는 비밀 정찰 임무를 요청한다,

“이봐, 시원한 것 좀 없나?” 요청에 응해 태국의 전진기지로 날아간 람보. 그러나 예감이 불길하다. 전진기지 지휘관 머독(찰스 네이피어)이 혼자서만 시원한 캔 코카콜라를 마신다. 람보는 물론 대령인 트라우트만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의리 없이 시원한 콜라를 혼자 마시는 놈, 저놈이 배신하겠지.

람보2가 개봉된 1985년, 미국은 안팎으로 전쟁을 겪었다. 모두가 다 아는 소련과의 냉전(冷戰) 그리고 ‘콜라 전쟁’이었다. 당시 코카콜라(코크)는 명운을 걸고 안팎으로 싸우고 있었다. 밖으로는 영원한 라이벌인 펩시콜라(펩시)가, 안으로는 자사의 신제품 ‘뉴 코크(New Coke)’가 상대였다.

세계 2차 대전 후 60% 이상 시장 점유율을 유지했던 코카콜라가 펩시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펩시 챌린지’가 파란을 일으키며 1983년에는 코카콜라의 점유율이 24%까지 떨어졌다.

펩시 챌린지는 당시 한국에서도 벌어졌다. 펩시 트레일러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다. 아무런 표지 없는 두 콜라를 맛보고 더 나은 것을 고르는 판촉 행사였다. 펩시 캔처럼 생긴 저금통이나 알록달록한 연필을 나눠줘서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다.

펩시에 밀린 주도권을 되찾고자 코카콜라는 회심의 카드를 꺼낸다. 신제품 ‘뉴 코크’였는데 반응이 나빴다. 아니, 그냥 나쁜 수준이 아니라 정말 대재앙 수준이었다. 시장조사에서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뉴 코크였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불호를 넘어서 증오에 이르는 수준으로 외면당했다.

소비자는 뉴 코크의 더 강한 단맛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기존 제품(코카콜라)이 단종될 거라는 소식에 반기를 들었다. 코카콜라는 사재기로 가격이 폭등했고, 성난 소비자의 항의 전화와 편지가 빗발쳤다.

결국 출시 79일 만에 코카콜라는 백기를 들고 소비자에게 투항했다. 기존의 코카콜라를 단종시키지 않고 ‘코크 클래식’이라 이름 붙여 뉴 코크(이후 ‘코크’로 개명)와 병행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콜라의 세계에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람보의 1인 비밀 전쟁은 훨씬 더 치열했다.

정찰 임무는 요식 행위에 불과했으니, 미국 내의 평화를 위해 전쟁 포로는 있더라도 지워버려야 하는 존재였다. 이를 알 리 없는 람보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자국민 전쟁 포로를 구해 나왔다가 곤경에 처한다. 목숨 걸고 수용소를 빠져나왔지만 혼자만 콜라를 마신 머독의 배신으로 구출 헬기가 그냥 가버린 것이다. 수용소로 끌려와 너무나도 당연한 배후인 소련군에게 고문당하다가, 종내에는 남은 포로를 구해 탈출한다.

오늘날 콜라의 세계는 평화롭지만 밑으로는 묘하게 양분돼 있다. 코크 클래식이 값싼 대체당류인 고과당옥수수시럽(물엿)을 쓴 미국산과 설탕을 쓴 나머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맛 좀 안다는 이들은 섬세함도 부족하고 쏘는 듯 날카로운 미국산 코크 클래식 대신 수입되는 멕시코산을 마신다.

그렇다면 한국산 콜라 맛은? ‘당시럽, 설탕, 기타 과당’이라고 원재료를 밝혀 애매하지만 고과당옥수수시럽 특유의 날카로운 단맛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뉴 코크는 ‘코크 II’로 개명됐다가 1992년 단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