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 굽기라는 종목이 있었다면 누가 국가 대표 선수로 나갈까?’ 도쿄 올림픽을 보면서 이런 실없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스테이크는 단순해 보이지만 제대로 맛내기 힘든 조리 종목. 제가 ‘스테이크 굽기 국가 대표팀 감독’이라면 김욱성 셰프는 무조건 선발할 겁니다. 김 셰프는 우리나라에서 스테이크를 가장 잘 굽는 ‘장인(匠人)’을 꼽을 때 빠지지 않습니다. 서울 이촌동 ‘이트리(Eatry)’ 오너 셰프로 10여년 간 스테이크 마니아들에게 사랑 받았죠.
김 셰프가 최근 ‘스테이크의 기초’(맛있는 책방)를 펴냈습니다. 그가 얼마 전 서울대 근처에 문 연 와인바 겸 와인샵 ‘보데가 스누’에서 만나 스테이크 맛있게 굽는 법을 들었습니다.
◇ 스테이크로 적합한 고기 부위&두께
김 셰프는 “정육점이나 마트에서 소고기 스테이크용으로는 안심, 스트립로인(채끝), 립아이(아래채 등심) 중 하나를 고르라”더군요. “물론 스테이크로 요리할 수 있는 부위는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세 부위가 ‘스테이크 같은 스테이크’를 조리하기 가장 적절한 부위합니다.”
고기 두께는 적어도 손가락 마디 하나 이상이어야 한다네요. “국내 정육점이나 마트 고기 진열장에는 보통 1~1.2cm 두께의 로스구이를 미리 포장해두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두툼하게 구워 썰어 먹는 즐거움이나 씹는 맛을 고려했을 때 두께가 2.5~3cm 정도 되도록 썰어 달라고 부탁하세요.”
◇ 소금, 스테이크 맛 좌우하는 핵심 요소
김 셰프는 “소금은 스테이크 맛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합니다. 소금 자체의 맛이 중요하단 건 아닙니다. 소금을 얼마나 어떻게 뿌리냐에 따라 고기 맛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는 거죠. 그는 “정제염은 나쁘고 천일염은 좋다는 말은 무시해도 좋다”고 합니다. 정제염은 순수한 소금이라 짠맛만 납니다. 정확한 짠맛, 예측 가능한 염도가 장점이죠. 대량 조리할 때 계량하기 적절합니다.
소금은 스테이크를 굽기 적어도 30분 전 미리 뿌려둡니다. 넉넉하게 하루 전 뿌려두면 더 이상적이고요. “소금은 적절히 사용하면 고기의 보수력을 높여 스테이크 질감을 더욱 좋게 만드는 역할도 합니다. 소금을 미리 뿌리면 고기의 수분이 빠진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채소에 소금을 뿌려두면 물이 나오듯 육즙이 빠져 나온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미리 소금을 뿌리면 오히려 세포의 보수력을 강화해 구운 뒤 육즙을 더 잘 가두게 됩니다.”
◇ 주철·스테인리스 팬을 쓰는 이유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프라이팬은 대부분 코팅 알루미늄 프라이팬입니다. 가볍고 음식이 덜 눌어붙는데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죠. 하지만 김 셰프는 단호하게 “주철이나 스테인리스 팬을 사용하라”고 권하더군요.
“고기를 1~1.5cm 두께로 얇게 썰어 구우면 코팅 팬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두툼해서 육즙을 품고 있고 씹는 맛이 살아있는, 스테이크다운 스테이크를 드시고 싶다면 코팅 팬으로는 힘들어요. 코팅된 알루미늄 팬은 강한 열로 세게 달구기에 적합한 조리 도구가 아닙니다. 두툼한 스테이크는 적절하지 않습니다.코팅 팬을 반복적으로 센 불에 가열하면 코팅 층이 손상될 수 있고, 차가운 고기를 올렸을 때 바로 식지요.”
주철 팬은 거푸집에 녹인 쇳물을 부어 만듭니다. 김 셰프는 “된장찌개 끓일 때 뚝배기를 사용해야 제격인 것처럼 미국인들에게 스테이크를 만들 때 주철 팬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툼한 주철 팬은 스킬릿(skillet)이라고 부르는데, 스테이크뿐 아니라 튀김·조림·소스 만들기 등에 만능으로도 쓰입니다. 무인도에 딱 한 가지 조리 도구를 가져가야 한다는 저는 주철 팬을 고르겠습니다.”
주철 팬은 이처럼 스테이크용으로 어쩌면 최적이랄 수 있지만, 무겁고 녹이 슨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물론 열이 날 정도로 달궈서 기름을 바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 길들이기를 하면 녹은 방지할 수 있습니다. 길들이기를 미리 해서 판매하는 업체도 많고요.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은 주철 팬보다 가볍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비싸고 재료가 들러붙는 단점이 있지요. 물론 잘 예열해 사용하면 들러붙지 않지만요. 스테인리스 팬은 ‘클래드(clad)’라고 해서 대개 알루미늄이나 구리를 겹쳐 붙여 제작합니다. 스테인리스보다 구리나 알루미늄이 열 전도를 더 잘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3중 팬은 스테인리스-알루미늄(또는 구리)-스테인리스를, 5중 팬은 스테인리스-알루미늄(또는 구리)-스테인리스-알루미늄(또는 구리)-스테인리스를 겹쳐 만든 금속판을 성형해 만듭니다.
◇ 안심은 팬프라잉, 등심은 팬그릴링
스테이크를 구울 때 사용하는 열(熱)은 전도열과 복사열 2가지가 있습니다. 전도열은 프라이팬, 철판 등 뜨겁게 달군 전도체에 고기를 직접 접촉해 열을 가하는 조리법입니다. 복사열은 숯불, 가스불 등에서 나오는 열에너지가 중간에 다른 전도체 없이 고기에 바로 전달되도록 굽는 조리법입니다. 복사열을 이용한 그릴링은 일반 가정의 주방에서 활용하기 쉽지 않으니 전도열에 한정해서 설명 드릴게요.
전도열로 스테이크를 굽는 방식은 ‘팬그릴링’과 ‘팬프라잉’이 있습니다. 팬그릴링은 팬에 기름을 살짝 만 두르고 굽는 방식입니다. 팬프라잉은 고기가 잠길 정도로 기름을 넉넉히 써서 튀기는 굽는 방식입니다.
책에서 김 셰프는 안심 스테이크를 팬프라잉으로 구웠습니다. 두께 4~5cm 안심 부위에 소금과 후추를 앞뒤로 넉넉히 뿌리고 식용유를 부어 20~30분 실온에 둡니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약 7mm 깊이로 붓고 충분이 달궈지면 고기를 올립니다. 1분 정도 구운 뒤 갈색으로 그을리면 뒤집어 다른 면도 바삭하게 굽습니다. 앞뒤로 잘 구워졌으면 불을 약하게 줄여 레어~웰던 중 원하는 정도로 익혀줍니다.
김 셰프는 립아이(아래채 등심) 스테이크 조리에 팬그릴링을 활용했습니다. 두께 2cm 립아이 부위에 소금과 후추를 고루 뿌리고 식용유를 넉넉히 발라 20분쯤 실온에 둡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잘 달궈지면 고기를 센 불에 올립니다. 한 면이 갈색이 나도록 잘 구워지면 뒤집어 다른 면도 굽습니다. 불을 중 불로 낮추고 자주 뒤집으며 원하는 굽기 정도로 굽습니다.
스테이크를 다 구운 뒤 ‘레스팅(resting)’이 매우 중요합니다. 레스팅은 고기를 구워 먹기 전 잠시 쉬게 하는 과정. 레스팅을 하면 뜨거운 표면으로 몰렸던 육즙이 고기 전체에 고루 재배치됩니다. 스테이크를 레스팅 하지 않고 바로 자르면 육즙이 확 빠져나가 퍽퍽한 고기를 먹게 됩니다. 김 셰프는 “식힘망이나 젓가락 위에 올려 남은 육즙이나 기름이 떨어지게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집에서 스테이크를 조리할 때는 굽는 시간의 절반 이상 충분히 레스팅해줍니다.
◇ 도대체 미디엄이 어느 정도야?
김 셰프는 “‘모든 사람의 미디엄은 다르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흔히 하는 말이죠. ‘미디엄으로 구워주세요’라는 주문을 받고 요리사가 적절하게 조리해 보냈지만 누구는 미디엄보다 설익었다고 하고, 누구는 너무 익었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스테이크 굽기 정도는 제대로 개인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또 자기가 아는 기준이 정확하다고 확신하기도 힘들죠. 그래서 김 셰프에게 굽기 정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물었습니다. 그는 책에서 레어(rare)부터 미디엄레어(medium rare)를 지나 (medium)까지만을 다뤘습니다. 김 셰프는 “두꺼운 고기를 익히기에 스테이크식 조리법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많이 익힌 것을 좋아한다면 얇은 고기를 굽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의 말을 ‘통역’한다면, “스테이크 제대로 먹을 거면 미디엄 이상으론 익히지 말라”가 될 듯합니다.
김 셰프는 “레어 스테이크는 덜 구운 스테이크가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레어 스테이크도 충분히 구운 스테이크입니다. 강한 열을 가하는 시간이 짧고 은근한 열을 이용해 구운 스테이크라고 해야 맞습니다.” 입에 넣었을 때 따뜻한 정도로 열이 남아 있어야 하고 겉은 미디엄 스테이크와 다를 바 없이 잘 그을려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구수함이 있어야 한답니다. 마블링이 적고 근섬유가 촘촘한 섬세한 고기, 즉 안심이나 스트립로인이 레어로 즐기기 좋습니다.
미디엄과 미디엄레어는 구분이 힘들죠. 먼저 미디엄레어 스테이크부터 말씀드리면, 모든 부위를 적절히 즐길 수 있는 온도입니다. 근내지방이 어느 정도 녹아 나올 만큼 열이 가해지기 때문에 마블링이 있는 등심 부위도 좋지만, 마블링이 적은 안심도 맛있게 조리해 먹을 수 있죠.
미디엄 스테이크에 대해 김 셰프는 “스테이크 단면이 전반적으로 분홍색인 것을 의미하지만, 그보다 입에 넣었을 때의 맛과 감각이 미디엄스러운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미디엄 스테이크는 미디엄레어에 비해 속 온도가 높아 조금 더 빡빡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마블링이 풍부한 립아이나 두께가 비교적 얇은 스트립로인을 조리할 때 적절합니다.”
어떠세요, 당장 스테이크 한 장 구워보고 싶지 않으세요? 김 셰프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스테이크에 진심이세요? 그렇다면 온 집안이 연기와 냄새로 가득 차는 걸 각오하세요. 그리고 제대로 된 프라이팬 하나 구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