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과천 ‘엘올리보’의 핀초스 하몬(왼쪽)과 핀초스 로모.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스페인 무곡(舞曲) ‘말라게냐’ 연주를 마치자 교수님이 ‘넌 전생에 스페인 사람이었을 것 같아’ 하셨어요. 그 밖에도 바흐의 ‘사라반드’, 리스트의 ‘스페인 랩소디’, 라벨의 ‘볼레로’ 등 스페인 정서와 리듬이 담긴 음악이 저랑 잘 맞았어요. 스페인 음식에 관심 갖게 된 계기였죠.”

권혜림(38) 한국스페인미식협회 대표는 국내 손꼽히는 스페인 식문화 전문가.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기 전인 10여 년 전부터 책과 블로그, 방송, 세미나, 쿠킹 클래스 등을 통해 스페인 음식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려오고 있다. 권 대표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양끝에 있는 스페인과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고 했다. “우리처럼 마늘을 좋아해 생으로 먹는 나라는 유럽에서 스페인이 유일합니다. 소시지의 일종인 ‘모르시야’는 한국의 피순대와 똑같아요. 파에야 등 쌀요리도 다양하고요.”

음식뿐 아니라 역사·문화·지역별 특징 등 스페인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스페인의 맛’(버튼북스) 개정판을 최근 펴낸 권 대표가 스페인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식당 4곳을 추천했다.

엘올리보: 스페인 가정집 초대된 기분

“스페인이 그리울 때 찾는 식당입니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다 보면 스페인 가정집에 초대받은 기분이에요. 스페인 음식은 식재료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게 특징인데, 이곳은 올리브오일·와인·치즈·하몬·사프란 등을 직접 수입해 식재료부터 훌륭합니다. 한국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스페인 음식도 매력적이에요. 이제 봄이니 봄동을 곁들인 로메스코 소스 도미찜이 나올 때가 됐네요.”

올해로 11년째를 맞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레스토랑이다. 건물부터 스페인 가정집을 옮겨다 놓은 듯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입맛을 돋우는 토마토 냉수프 가스파초, 스페인식 볶음·영양밥 파에야 등 음식이 두루 훌륭하다. 와인에 곁들이기 알맞은 한입거리 음식 타파스도 다양하다. 권 대표는 “스페인에선 ‘타파스 바의 솜씨를 알아보려면 크로케타(크로켓)를 주문해보라’는 말이 있다”며 “이 집에선 속은 크림처럼 부드럽고 겉은 바삭한 최고 수준의 크로케타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알듯말듯한 스페인 음식을 골라 주문하기 힘든 이들을 위해 전채·수프로 시작해 타파스, 메인, 후식으로 구성된 다양한 코스 메뉴가 있다.

엔살라다 델 엘올리보 2만2000원, 감바스 알 아히요 2만1000원, 핀초스 하몬·로모 각 2만2000원, 파에야 마리네라 4만5000원. 경기 과천시 뒷골2로 16-1, (02)502-1156

모멘또스: 쌀 익힘 정도 완벽한 파에야

“바르셀로나에서 요리를 공부한 셰프가 운영해 그런지, 식당에 들어서면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 느낌이 물씬 나요. 파에야는 쌀의 익힘 정도가 딱 적절한 게 ‘요리사가 긴장감을 갖고 집중해서 만들었구나’가 느껴져요.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를 강력 추천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감자 오믈렛이라 할 수 있는데요, 흘러내릴 듯 부드럽게 익은 감자와 달걀의 식감이 기막혀요.”

서울 경리단길에 있는 작은 식당. 바르셀로나에서 요리를 공부한 셰프가 운영한다. 오징어 먹물을 넣어 까맣게 색을 낸 파에야 ‘아로스 네그로’가 유명하다.

아로스 네그로 3만8000원, 감바스 알 아히요 1만9000원, 오븐에 구운 가지 요리 1만8000원.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13가길 19, (02)6205-9302

스페인클럽 광안리점: 지중해 여행 듯 설레

“스페인 음식을 한국식으로 푸짐하게 내는 식당입니다. 서울·대구·부산에 여러 지점이 있지만 광안리점을 꼭 집어 소개하는 건 여기에만 있는 ‘마리스코 아 라 플란차’ 때문이에요. 통오징어, 가리비, 홍합, 조개, 새우 등 해산물을 주방에서 조리한 다음 플란차(철판)에 옮겨 내옵니다. 와인과 곁들여 먹기에 딱이죠. 식어도 맛있고, 빵을 추가 주문해 해산물 맛이 깊게 밴 올리브오일을 찍어 먹어도 좋아요.”

부산 광안리에 횟집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식당에서 해 질 무렵 테라스에 앉아 스파클링 와인을 홀짝이며 광안리 앞바다를 보며 먹다 보면 지중해 어딘가에 여행 온 듯 설렌다. 광안대교와 주변 고층건물이 화려하게 빛나는 야경도 멋지다.

감바스 피칸테스 1만5500원, 마리스코 아 라 플란차 4만5000원.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로278번길 42 오션브릿지 1층, (051)754-1164

숨골: 제주 식재료와 스페인 요리의 조화

“제주 토박이 요리사가 현지 식자재를 활용해 스페인 음식을 만들어요. 매일 제주 동문시장에서 장 봐서 메뉴를 구성한다고 해요. 제주 딸기를 넣어 새콤달콤한 맛을 살린 가스파초, 제주 돌문어로 만드는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의 문어 요리 ‘풀포 가예고’, 바스크(Basque) 지역 방식으로 오븐에 구워 올리브오일과 마늘, 셰리식초를 곁들인 제주 참가자미가 기억에 남네요.”

제주도에 있지만 안쪽으로 한참 들어간 조용한 시골에 숨듯 자리한 식당. 아늑하고 한적한 분위기에서 스페인뿐 아니라 다양한 서양요리로 풀어낸 제주 식재료를 맛볼 수 있다.

프랑스 캐비아를 곁들인 제주 가리비구이 1만6500원, 제주 한우 채끝살 스테이크 2만6500원, 제주 황금향 샐러드 9500원. 제주 제주시 해안마을길 134 2층, (0507)1407-0716

한국스페인미식협회 권혜림 대표가 펴낸 '스페인의 맛' 개정판./버튼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