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지민.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는 ‘조제’(한지민)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만 머물며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한다. 지난 10일 개봉해 12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조제’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조제가 ‘영석’(남주혁)을 만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로맨스 영화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3년 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했다.

조제 역을 맡은 배우 한지민(38)은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멜로 영화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적 색이 입혀지면 어떻게 표현될지 설렜다”고 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김종관 감독님과 조제의 조합이 궁금했고, 제가 어떤 색을 입힐 수 있을까 설렘만으로 선택하게 됐습니다.”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은 원작보다는 느릿하고 쓸쓸한 감성과 영상미로 새로운 ‘조제’를 만들어냈다.

원작의 조제가 가시 돋쳐 있으면서도 발랄한 매력을 지녔다면 한지민의 조제는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다. 한지민은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인데, 이 영화는 가공되지 않은 민낯의 느낌을 전한다”고 소개했다. “조제는 매 장면 물음표가 생기는 캐릭터였어요. 복합적인 감정을 꽉 채워서 표현하지 않고 눈빛으로만 담아내는 인물이라 연기하기 어려웠죠.”

배우 남주혁.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상대 배우인 남주혁(26)과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이어 두 번째 호흡. 모델 출신인 남주혁은 데뷔 초반 연기력 논란도 있었으나 ‘눈이 부시게’에서 급격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남주혁은 “의식적으로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하기보단 매번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뿐이다”라면서 “다 지나고 나서야 ‘저때 내가 무슨 마음으로 연기했었지’ 돌아보게 되는 편”이라고 했다.

‘조제’에선 지방대 출신으로 취업에 차별을 겪으며 불안한 청춘을 보내는 대학생 영석 역을 맡았다. 남주혁은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청춘을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그러다 조제를 만나고부터 조금씩 사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캐릭터로 해석했다”고 했다. “눈 내리는 밤에 조제와 영석이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어요. 연기하면서도 ‘아, 이게 아닌데’ 싶어서 계속 다시 찍다가 해가 떠서 마무리해야 했거든요. 숙소에 돌아와 한숨도 못 자고 고민하다가 감독님께 그날 밤 다시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죠. 늘 만족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남주혁은 올 한 해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tvN 드라마 ‘스타트업’과 영화 조제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는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차례로 나오게 돼 ‘캐릭터가 다 똑같아 보이면 어쩌지’하는 불안이 컸다”면서 “연기자로선 너무나 행복한 일이지만 저 자신에겐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한지민은 거칠고 센 언니로 변신했던 영화 ‘미쓰백’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등 각종 상을 휩쓴 후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그는 “‘조제'는 또 한번의 성장통을 겪게 해준 영화”라고 표현했다. “늘 성장하고 발전하고 싶은데 항상 어려운 숙제를 맞닥뜨리게 되네요. 숙제가 괴롭기도 하지만 그 고통이 좋아서 작품을 선택할 수도 있더라고요.”

한지민은 ‘숙제’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질문을 받을 때도 정답을 찾고 싶은 학생처럼 큰 눈을 반짝였다. 그는 “조제의 무덤덤하고 담백한 이별 인사를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저는 뭐든지 좀 느린 편이라 이별 앞에서도 담담하지 못하고 비워내는 시간도 오래 걸려요. 이젠 어떤 만남이든 아픈 끝맺음보다는 조제처럼 행복했던 기억들로 마지막 장면을 남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