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의 승리일까, 송강호의 뒤집기일까. 강동원 주연 영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과 송강호 주연 ‘거미집’이 추석 연휴 직전인 27일 동시 개봉해 관객 몰이에 나선다. 24일 현재 강동원의 ‘천박사’가 실시간 예매율 30% 안팎으로 1위를 기록 중이다. 송강호의 ‘거미집’은 20% 안팎으로 2위를 달리며 바짝 추격하고 있다.

철저한 오락 영화 ‘천박사’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CJ ENM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은 영리한 오락 영화다. 메시지를 보여줄 생각은 애초에 없다. 진지하게 오락에 집중해 충실하게 마무리한다.

우선 타깃이 명확하다. 목표는 ‘전 세대가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 조준 방향을 정한 뒤 흔들리지 않는다. 원작인 웹툰 ‘빙의’를 몰라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간다. 제목 단어 ‘설경’(說經)을 ‘겨울 경치’(雪景)로 오해하지 않도록 ‘귀신을 잡아가두는 부적’이라고 도입부에 친절하게 알려주는 식이다. 주인공 천박사(강동원)는 마을을 지켜온 당주집 장손. 유튜브 퇴마채널이나 운영하는 가짜 퇴마사인 줄 알았던 그가 진짜 퇴마사임이 밝혀지고, 가문의 원수인 악귀를 잡아가두려 나서면서 액션이 펼쳐진다. 우주를 배경으로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되는 결말까지 코미디, 판타지, 액션, 무속, 오컬트, 좀비물을 수시로 오간다. 이런 장르가 취향이 아니라면 ‘천박사’는 적당한 영화가 아니다.

주연 천박사 역의 강동원은 코미디 타율이 좋다. 작품성은 인정받았으나 흥행은 미지근했던 ‘브로커’(2022)보다 ‘전우치’(2009, 606만)의 천방지축 도사나 ‘검사외전’(2016, 970만)의 꽃미남 사기꾼이 그의 매력을 더 잘 보여준다. ‘천박사’에서는 복수에 치우치지 않고 유머를 보여주는 인물로 균형점을 잡았다.

‘천박사’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일등 공신은 천박사에게 맞서는 악귀 역을 맡아 끝까지 긴장의 축을 팽팽하게 잡아끈 배우 허준호일 것이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를 포함해 드라마 ‘더 글로리’, 심지어 예능인 ‘나는 솔로’에서도 증명됐듯 강력한 빌런(villain)의 존재는 최근 대중 영상물 성공의 핵심이다.

영화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은 데뷔작인 ‘천박사’에서 자신이 가진 카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기생충’에서 사장네 지하실에서 살던 가정부 부부인 이정은과 박명훈이 번듯한 단독주택에 사는 부유층 부부로 나와 초반에 호기심을 일으킨다. 지루해지려 할 중간 즈음에 ‘헤어질 결심’ ‘밀수’의 배우 박정민이 선녀를 섬기는 무당으로 등장해 능청스럽게 배경 설명을 풀어낸다. 그가 섬기는 선녀로 걸그룹 블랙핑크의 지수가 깜짝 출연한다.

전 세대를 염두에 두고 등급 심사를 신청해 성공적으로 ‘12세 관람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신체 훼손이 묘사된 일부 장면은 표현이 과도해 불쾌감을 줄 수 있다. 한국 영화는 어느 새인가 신체 훼손에 지나치게 관대해져버렸다.

막장과 예술 그 사이 ‘거미집’

'거미집'. /바른손 이앤에이

올해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인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은 카메라 앞과 뒤, 막장과 예술 사이를 오가는 블랙 코미디다. 1970년대 데뷔작의 성공 이후로 싸구려 치정극만 찍어왔던 영화감독 김열(송강호)은 이번에야말로 걸작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김열은 이미 촬영이 끝난 영화의 결말을 다시 찍으려 하고, 그에게 단 이틀의 시간이 주어진다.

배우들을 죄다 다시 불러모은 김열은 현장 안팎으로 부딪힌다. 현장 밖으로는 정부의 시나리오 검열과 돈밖에 모르는 제작자와 싸워야 하고, 현장 안에선 “배역이 마음에 안 든다” “빨리 끝내달라” 징징대는 배우들한테 시달린다. 무엇보다 괴로운 싸움은 내면에서의 싸움이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는 스스로 제일 잘 알기에, 본인의 재능에 확신이 서질 않는다. 온갖 장애물을 안고 재촬영에 돌입하면서 환장할 소동극이 벌어진다.

가장 큰 강점은 유머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남의 얘긴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데 때로는 정곡을 찔러서 웃기고, 때로는 허공에 헛스윙을 해 웃긴다. 제작 보고회에서 배우 송강호는 “‘반칙왕’ 같은 김지운 감독의 초기작에서 드러난 독보적인 감각이나 창의력을 다시 보게 돼 반가웠다”고 했다.

말로 하는 액션극처럼 시종일관 따발총 같은 대사들이 오간다. 김지운 감독은 “배우들 간의 앙상블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연기 장인들의 티키타카 대사가 난무하는 영화”라고 했다. 임수정·오정세·정수정·장영남 등 캐스팅 과정부터 대사 전달력이 좋은 배우들을 섭외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도대체 무슨 장면을 찍으려고 저러는지, ‘거미집’의 결말에 대한 의문은 영화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 속 영화 ‘거미집’엔 아쉬움이 남는다. 김기영과 히치콕 등 당대의 영화를 적절히 섞어놨을 뿐, 새로운 해석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아쉬운 건 ‘이민자’(임수정) 캐릭터다. 김열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가 그랬듯) “욕망에 충실한 주체적인 신여성을 그려야겠다”며 재촬영을 시작했으나, 결국 이민자는 어떤 인물인지 보이지 않고 임수정의 표독스러운 연기만 남았다.

‘영화에 대한 영화’가 대중에게 소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1920년대 할리우드 영화 제작 현장을 다뤘던 ‘바빌론’ 역시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렸다. 소품 전화기로 ‘75국에 1547′을 돌리라고 하자 “’국’ 버튼은 어딨냐”고 물었다는 배우 정수정처럼 1970년대 문물에 익숙지 않은 요즘 세대와의 문화적 차이도 진입 장벽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