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지아난드레아 노세다(58)가 박재홍(23)을 와락 끌어안았다. 환한 웃음과 함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18일(현지 시각) 오후 7시30분, 오스트리아 빈 인근 그라페넥.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예술감독을 맡은 그라페넥 페스티벌 일환으로 열린 박재홍의 협연이 끝난 직후였다.
노세다는 워싱턴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취리히 오페라 음악감독,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객원 수석지휘자로 활약하는 이탈리아 출신 실력파. 런던 심포니와 함께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협주곡 1,2번 음반을 내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박재홍은 이날 노세다가 지휘한 유럽연합 청소년오케스트라(EUYO)와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협연했다. 기교를 과시하지 않고 오케스트라에 녹아든 연주였다. 커튼콜이 끝나자 청중은 물론 단원들까지 발을 구르며 앙코르를 요청했다. 노세다도 악단 뒤편에 앉아 앙코르를 청했다. 달아오른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바흐의 프렐류드 b단조가 이어졌다. 연주는 차분했지만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왔다. EUYO가 후반에 연주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도 거장들의 조련을 받은 덕분에 청소년 오케스트라답지 않게 원숙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쳤다.
이날 공연은 페스티벌 상징인 야외 공연장 ‘구름 탑’(Cloud Tower)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리허설 도중 폭우 예보가 나오면서 갑작스레 실내 공연으로 바뀌었다. 연주 직후 만난 박재홍은 “공연 30분을 앞두고 리허설을 10분밖에 못했다”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조련한 유럽연합 청소년오케스트라
1976년 창단한 EUYO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창단 감독을 맡았고, 카라얀, 번스타인, 주빈 메타, 바렌보임 같은 거장이 지휘를 맡았다. 매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EU 27국 16~26세 차세대 연주자 140명으로 구성됐다. 박재홍은 작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의 영예를 차지한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16일 노세다·EUYO와 같은 곡을 협연한 데 이어 그라페넥이 두 번째 무대였다. 지난 달부터 이탈리아에서 순회 연주 중인 박재홍은 “볼차노 연주 전날 지휘자와 미팅을 했는데, 특별한 주문 없이 지금 그대로가 좋다고 해줘 감사했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손열음, 김선욱, 문지영에 이어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제자 계보를 잇는 막내다. 다음 달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KBS교향악단과 그라페넥에서 선보인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연주한다. 10월엔 정명훈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과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한다.
박재홍 연주 다음 날인 19일 최근 명문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을 낸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연주가 이어졌다. 세계적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이끄는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그라페넥 페스티벌이 한국 연주자들의 유럽 무대 등용문이 된 것 같다.
◇사이먼 래틀, 카우프만, 디도나토...별들이 찾는 그라페넥 페스티벌
그라페넥 페스티벌은 코로나 시대에 맞서듯, 올 들어 몸집을 확 키웠다. 지난 13일 세계 정상급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주역을 맡은 베토벤 ‘피델리오’를 개막작으로 올린 데 이어 9월 3일과 4일 부흐빈더와 빈 필하모닉, 톤퀸스틀러 협연으로 마무리 짓는 호화판 향연이다. 만프레드 호넥의 피츠버그 심포니, 사이먼 래틀의 런던 심포니와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치아 코파친스카야 같은 쟁쟁한 연주단체·연주자들이 찾아온다./그라페넥(오스트리아)=김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