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 가 오는 6월 1일 영국 런던 채링 크로스 시어터에서 정식 개막해 두 달간 현지 관객을 만난다. ‘명성황후’ 등 몇몇 작품이 영미권에서 짧게 공연한 적은 있었지만, 세계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 런던에서 현지 창작진과 배우들이 참여한 영어 버전의 한국 창작 뮤지컬이 장기 공연에 돌입하는 건 우리 공연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불가능한 꿈을 가능케 한 지휘자는 제작사 ‘라이브’ 강병원(46) 대표. 최근 서울 대학로 인근 한옥 사옥에서 만난 그는 “우리 창작 뮤지컬의 해외 공연 기회를 늘리려 애써왔지만, ‘마리 퀴리’가 런던 장기 공연 첫 작품이 될 거란 건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대극장 뮤지컬은 외국 라이선스 작품인 경우가 많은 우리 공연 시장에서 강 대표는 창작 연극·뮤지컬에 외골수로 자신을 던져왔다. ‘팬레터’와 ‘마이 버킷 리스트’의 중국 순회 공연 등 우리 뮤지컬 해외 공연의 길을 열어온 개척자이기도 하다.
뮤지컬은 노벨상을 두 번 받은 폴란드 출신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를 프랑스 이민자이자 남성 중심 과학계의 소수자 여성으로, 또 상업적 탐욕과 충돌을 빚는 양심적 과학자로 풀어낸다. 런던 입성까지 우여곡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는 “2017년 회사 창작 공모전 ‘글로컬 라이브’에서 대본을 발견해 이듬해 트라이아웃(시험) 공연을 올렸을 때 반응은 ‘반반’이었다”고 했다. “재밌긴 한데 여성 관객 위주 시장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뮤지컬 흥행이 되겠느냐는 회의적 시선도 컸죠.”
첫 반전은 트라이아웃 공연 뒤 창작자들과 절치부심해 올린 2020년 초연이었다. “300석 규모 충무아트센터 중극장이었는데, 막이 내리자마 관객들이 용수철 튀어오르듯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어요.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무대에서 백스테이지에서 배우도 스태프도 다 같이 엉엉 울었죠. 하지만 저는 울 수 없었습니다. 갈 길이 멀었거든요.”
공연을 지속시키려면 규모를 키워야 했다. 그해에 바로 이어서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700석 규모로 다시 재연을 올렸다. ‘띄워앉기’가 불가피했던 코로나 시국에도 대중과 평단 모두 이 작품에 열광했다. 제5회 뮤지컬 어워즈에서 대상 등 5관왕에 올랐다.
중국시장을 두드렸지만 “여성이 주인공인 극으로는 힘들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두 번째 반전 계기는 마리 퀴리가 쇼팽, 코페르니쿠스와 함께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폴란드에서 찾아왔다. 2021년 바르샤바 한국 주간 행사에 초대돼 호평받은 것. “폴란드 사람들이 이순신 뮤지컬을 만들어서 서울에서 공연했는데 심지어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고맙다, 우리가 못 한 일을 해줬다’며 반응이 뜨거웠죠.”
2022년엔 국제 공연예술 축제 ‘바르샤바 뮤직가든스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대상인 황금물뿌리개상을 받았다. “공연실황 상영 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여기가 칸영화제인가 싶었어요. 크레딧 다 내려갈 때까지 기립박수에, 객석 사이드에 있던 배우들도 계속 박수를 받았죠. 공연제작만 13년을 했는데, 진심 이 일 하기를 정말 잘했다 싶더군요.” 바르샤바 마리 퀴리 박물관에서는 5개월간 한국 뮤지컬 ‘마리 퀴리’의 소품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까지 열었다.
폴란드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영국 문을 두드렸다. 2022년에 45분 분량 하이라이트 쇼케이스를, 2023년엔 전막 쇼케이스 공연을 런던에서 진행했다. 현지 프로듀서들과 만나 보니 제작비도 해 볼 만한 수준이었다. “이번 공연 극장주가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모두 활동하는 분인데, 마리 퀴리가 영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고 학생 단체 관객도 기대할 수 있을 거라며 대관을 받아줬어요. 잘되면 규모를 키워 브로드웨이도 노려보자고 하더군요, 하하.”
강 대표는 뮤지컬 개막 못지않게 6월 22~23일 런던의 심장부 트래펄가 광장에서 열리는 ‘웨스트엔드 라이브’를 기다린다. 무료로 런던 시민들에게 공개되는 이 축제를 지난해에도 관객 6만5000명이 지켜봤다. 그해 공연하는 뮤지컬 40여 편이 대표곡을 선보이는 자리. ‘마리 퀴리’도 이 무대에 서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이 만든 ’마리 퀴리’의 노래가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울려퍼지는 장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어요.” ‘마리 퀴리’는 이제 우리 창작 뮤지컬의 세계 진출 본격화를 알리는 팡파르가 되길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