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지지 않았죠. 학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는데, 문창과 학생들에겐 꿈같은 상이거든요. ‘선생님들’이 받으시는 거라 여겼고, 뮤지컬로 데뷔한 뒤엔 순(純)문학 쪽 상은 기대도 안 했었고요.”
‘일 테노레(Il Tenore·이탈리아어로 ‘테너’)가 제18회 차범석희곡상 뮤지컬 대본 부문상을 받게 됐다고 전했을 때, 박천휴(41)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와 공동 수상자 윌 애런슨(43)은 ‘윌·휴 콤비’로 통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 등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서정적 뮤지컬을 함께 만들었다. “정말 열심히 작업했고 애착이 큰(closest to my heart) 작품이거든요. ‘눈 높은’ 분들이 보고 좋아해주셔서 더 영광이죠.” 애런슨이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브로드웨이의 1100석 규모 벨라스코 극장에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영어 버전 공연을 올리고 있던 두 사람을 이달 초 뉴욕에서 만났다.
둘은 주로 박천휴가 작사와 대본을, 윌 애런슨이 작곡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일 테노레’처럼 대개 공동 극작이었다. 일제강점기 동양 제일의 테너로 불렸던 한국 최초 성악가 이인선(1907~1960)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 일제의 검열로 연극을 못 하게 된 대학생들이 조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고, 청년 개개인의 꿈과 항일(抗日)의 대의가 부딪치며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박천휴는 “2013년 ‘번지 점프를 하다’ 재연을 마치고 뉴욕에 돌아와 있는데, ‘한국 최초의 테너는 누구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시작”이라고 했다. 이인선에 관해 조사해 애런슨에게 메일로 보냈다. 애런슨은 하버드대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오페라를 공부한 뒤 뉴욕대 대학원에서 뮤지컬을 전공했다. “오페라 이야기라면 누구보다 윌이 잘 쓸 테니까요. 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한국 학부를 거쳐 뉴욕대에서 공부한 뒤 예술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귀국해 취직하길 원하셨죠. 현실이 이루고 싶은 꿈과 부딪힐 때 그 고통과 의미에 대해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애런슨은 “역사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초고는 160쪽, 4시간 넘는 분량이었는데 나중에 100쪽 분량으로 줄였다”고 했다. 박천휴는 “초고는 4가지 버전이 있었고, 길게는 6·25전쟁까지 30여 년에 걸친 이야기여서 소설처럼 읽는 재미가 있었다”며 웃었다. “공연을 1년도 안 남기고 극장과 캐스팅까지 정해졌을 때, 대하소설 같은 시대 이야기를 버리고 첫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1년 반 정도 기간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어요.” 두 사람은 “함께가 아니라면 그런 결단은 어렵다. 둘이 함께 일해서 좋은 점”이라고 했다.
‘일 테노레’는 애런슨에게도 의미가 깊다. 그의 형은 하버드대에서 드라마를 전공한 뒤 의학대학원을 나와 의사가 됐다. 그 역시 처음엔 음악을 전공한 뒤 의사가 될 생각이었다. “세상엔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 많잖아요. 이런 세상에서 예술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걸까. 작곡가가 되는 게 의사가 되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일까 늘 고민했어요.” ‘일 테노레’는 그러니 시대를 뛰어넘는 젊은이들 모두의 꿈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일제 당시 청년들의 인터뷰 등 자료 조사를 하며 두 사람은 확신을 갖게 됐다. 그때의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늘 시대에 짓눌리기만 했던 게 아니며, 밝은 미래를 꿈꿨다는 사실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박천휴는 “세세하게 그 당시 청년들을 들여다볼수록 더 안타깝더라”고 했다. 애런슨은 “오페라는 인생을 보는 시점이고, 비극도 오페라의 눈으로 보면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삶과 세계의 혼돈도 예술을 통해 들여다보면 아름다워지죠. ‘일 테노레’는 그런 예술의 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뉴욕=이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