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해 매진 기록을 써 내려간 ‘대극장 연극 시대’가 활짝 열렸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넘어서려 애쓰는 ‘배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 공연 노력이 주목받았다. K뮤지컬은 현지 제작, 협업, 창작진 교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며 성공을 거뒀다. 소수 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무용 장르에선 한국 무용수 최호종과 발레리노 전민철 등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는 스타들이 탄생했다.
실속은 다시 따져 봐야 하지만,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공연 시장 성장은 가파르다.
본지가 자체 집계한 결과 지난 28일까지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통계에 나타난 올해 공연 티켓 매출은 1조4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같은 날까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영화 티켓 매출은 1조1813억원(잠정)이었다. 전년인 2023년 1조2697억원으로 같은 해 영화 티켓 매출액(1조2614억원)을 처음 넘어섰던 공연 시장 규모가 2년 연속 영화를 추월할 것이 확실시된다.
◇스타 캐스팅 ‘대극장 연극 시대’ 활짝
전도연·박해수의 ‘벚꽃동산’(연출 사이먼 스톤), 황정민·김소진의 ‘맥베스’(연출 양정웅), 조승우의 ‘햄릿’(연출 신유청) 등 영화와 TV로 익숙한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한 대극장 연극들의 흥행 행진이 연중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연출가가 체호프의 러시아 연극을 현재 서울 배경으로 재해석하거나(벚꽃동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거대한 무대에 3층으로 된 세트와 다양한 영상 기술을 동원해 블록버스터 영화급의 비주얼을 선보이는(맥베스) 등 영상 시대 관객의 눈높이도 만족시켰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전 회차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며 정통 연극의 관객층을 확장한 신구·박근형 배우의 ‘고도를 기다리며’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소극장 연극은 여전히 고전하면서 연극계 ‘빈익빈 부익부’ 심화에 대한 우려도 컸다.
◇장애 넘어선 공연에 더 가까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은 이제 많은 연극 공연장에서 필수가 됐다. 더 나아가 ‘무(無)장애’라는 뜻으로 그동안 쓰여온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대신하는 개념으로 공연 예술 참여와 감상에서 장애로 인한 문제를 넘어서려는 ‘배리어컨셔스’ 공연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됐다.
올 초 뮤지컬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작·연출 조윤지)의 경우 무대 위로 수어 통역사가 오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대·의상 등 공연 전 ‘터치 투어’를 진행했다. 객석 조명을 켠 채 공연 중에도 관객이 자유롭게 극장을 드나들 수 있게 하는 ‘릴랙스드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 시도도 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배우가 여주인공을 연기한 ‘젤리피쉬’(연출 민새롬), 농인 배우 6명이 참여해 수어로 연기한 국립극장 기획 연극 ‘맥베스’(각색·연출 김미란)를 비롯, 장애가 있는 배우들이 무대의 주역으로 서는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한국이 좁다” K뮤지컬, 세계로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해 순항 중인 ‘위대한 개츠비’는 내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 일정도 확정했다. 제작사 ‘라이브’(대표 강병원)의 국내 대표적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도 올해 런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국내에서 소극장 뮤지컬로 흥행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올해 차범석희곡상 수상자 윌 애런슨과 박천휴 콤비가 미국 현지 창작진과 협업해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개막했다. 별점 짜기로 유명한 가디언이 ‘별 4개 반’을 주는 등 현지 언론의 압도적인 호평 속에 내년 10월까지 공연을 확정했다.
역시 창작 뮤지컬 ‘렛미플라이’(연출 이대웅)는 대만으로 건너가 현지 배우들과 함께 레플리카(원본과 똑같이 공연하는 것) 라이선스 공연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일본, 중국 등 ‘K뮤지컬’의 해외 진출 소식이 연중 계속 전해졌다.
◇무용의 재발견… 최호종·전민철 스타 탄생
소수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무용 장르에서는 올해 놀라운 스타 탄생이 이어졌다.
케이블 방송 엠넷의 무용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이하 ‘스테파’)를 통해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장르와 상관없이 대중적 인기를 얻은 무용수가 늘었다. ‘스테파’에선 특히 ‘한국 무용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한국 무용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출신의 최호종은 그중 가장 높은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발레에서도 세계 최고 발레단인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할 예정인 한예종 학생 발레리노 전민철이 오르는 무대마다 매진시키는 전례 없는 인기를 누렸다.
세계 발레의 수퍼스타인 마린스키의 김기민과 파리오페라발레의 박세은이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에서 함께 공연하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 수석 무용수 서희가 유니버설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서 춤추는 등 해외 활동 중인 우리 무용수들의 내한 공연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