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저녁(현지 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큰 약 2400석 규모의 ‘런던 콜리세움’ 극장. 무대 위 ‘개츠비‘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조명이 모두 꺼지자, 4층까지 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우리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단독 대표 제작자로 만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이하 ‘개츠비‘)가 미국 뉴욕에 이어 세계 공연의 양대 ‘메카‘라 할 런던에도 성공적 첫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런던 연수 중 이날 공연을 본 한국문화예술위 정재은 피디는 “영국 관객은 냉정하고 기립 박수에 인색하다. 그런데 당연한 듯 기립해 환호하며 박수 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더라”고 했다.
◇60만 관객 넘긴 뉴욕… 이제 런던 차례
이 뮤지컬은 지난 11일 시작한 프리뷰 공연도 전 회 매진을 기록했다. 지난해 4월 공식 개막한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은 400회 넘는 공연 동안 60만명 이상의 관객이 봤고, 매출 약 6800만달러(약 980억원)를 넘어섰다. 지난해 토니상(뮤지컬 의상상)을 받은 것도 한국 프로듀서가 제작한 뮤지컬이 세운 최초의 수상 기록이었다.
뉴욕에서 거둔 성공은 런던이 이 뮤지컬을 위해 준비한 환대의 격도 높였다. 이날 오후 내내 트래펄가 광장과 코벤트가든에 둘러싸인 극장 앞 거리 교통을 경찰이 통제하는 동안, 유명 인사들이 레드 카펫 위에 등장하자 여기저기서 비명 같은 환호성이 터졌다.
BBC 등에서 자기 이름을 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 아네카 라이스, ‘나이브스 아웃’ 등의 배우 제시카 헨윅, ‘왕좌의 게임‘의 이완 리언, 록그룹 맥플라이의 보컬 톰 플레처 등 특히 온라인에서 영향력이 큰 ‘셀럽‘들이다. 공연 뒤 오프닝 나이트 파티는 런던 힙스터들의 ‘핫 플레이스‘인 래플스 호텔 연회장으로 이어졌다. 참석자만 800명이 넘었다.
◇피츠제럴드 소설을 대극장 뮤지컬로
F.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가 쓴 소설 ‘위대한 개츠비‘(1925)는 ‘미국의 영혼‘과 같은 작품.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한 남자의 비극적 운명에 관한 이야기로, 재즈 시대의 배금주의와 타락, ‘아메리칸 드림‘의 허망함 같은 주제가 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에 담겨 있다.
뮤지컬은 호화로운 개츠비 저택 파티 장면들로 관객을 홀리면서, 주인공들의 연애 감정은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 문법으로 풀어낸다. 빅 밴드 재즈풍 음악, 화려한 무대미술과 의상, ‘댄스 챌린지’ 열풍까지 불렀던 독창적 안무도 매력 포인트다. 2막 후반부에선 차곡차곡 쌓인 갈등과 긴장을 폭발시키며 원작 속 메시지도 알뜰히 챙긴다.
원작 소설의 심오함 대신 화려함만 남았다는 취지의 평가와 함께 더 타임스와 인디펜던트가 별 2개, 가디언이 별 1개를 주며 혹평했지만, 관객의 평가는 다르다. 쇼스코어닷컴에선 27일 오전 9시(현지 시각) 353명이 참여해 93%가 긍정적이라 평했다.
◇“사치와 허영 아랜 밑바닥 인생 향한 애정”
개막 다음 날 열린 기자 간담회에는 연출가 마크 브루니,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 안무가 도미니크 켈리 등 창작진과 개츠비 역의 주연 배우 제이미 머스캐토가 참석했다. 머스캐토는 올해 영국 공연계 최고의 영예인 로런스 올리비에상의 연기상 최종 후보였다. 그는 “개츠비는 늘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만 가닿지 못하는, 만족을 모르며 계속 무언가를 더 원하는 사람 같다. 나도 공연 마지막 날까지 더 좋은 모습을 찾으려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신춘수 대표님께 꼭 말씀드릴 게 있는데, 내가 9월 이후에 일이 없다”고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5개월간 런던 콜리세움 공연 뒤 극장을 옮겨 웨스트엔드 공연을 이어갈 ‘개츠비‘에 이후로도 계속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담은 애교 섞인 농담이다.
창작진의 말에도 작품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연출가 브루니는 “이 뮤지컬은 시각과 청각의 스펙터클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외형 아래에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이들의 그늘도 함께 담겼다. 소설 ‘개츠비’ 출간 100년을 맞는 올해는 특히 ‘아메리칸 드림‘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되새겨 볼 소중한 기회”라고 했다.
◇7월 GS아트센터서 개막하면 뉴욕·런던·서울 동시 공연
신춘수 대표는 브로드웨이 ‘개츠비’ 개막 당시 “충족되지 않은 결핍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했었다. 이번 ‘개츠비‘의 성공이 그 결핍과 허기를 어느 정도 진정시켰을까. 신 대표는 “어쩌면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결핍을 꿈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건 내가 뮤지컬을 만들며 새로운 도전을 이뤄가는 기반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개츠비‘는 7월부터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 공연이 예정돼 있다. 현재 캐스팅이 마무리 단계. 뉴욕, 런던과 서울에서 ‘개츠비‘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신춘수 대표는 “투어가 아니라 한국만을 위한 ‘서울 프로덕션‘이다. 자막이 있는 영어 공연이지만, 뉴욕·런던과 똑같은 무대를 한국 관객들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런던=이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