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조선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CTS

성탄절(25일)을 앞두고 거리 곳곳에서 성탄 트리를 만나는 계절입니다. 서울시청 앞에도 대형 성탄 트리가 불을 밝혔고 크고 작은 교회는 물론이고 상점, 음식점 등도 예쁘게 성탄 트리를 장식하고 있어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도 성탄과 연말임을 느끼게 합니다. 며칠 전엔 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에도 성탄 축하 트리가 등장했지요. 사찰에 성탄 트리가 장식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어울려 지내는 모습의 상징으로 외국인들은 신기해 하기도 하지요.

덕수궁 돌담길에 설치된 성탄 트리. /CTS

그런 가운데 최근 덕수궁 돌담길에 특별한 트리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지난 18일부터 덕수궁 대한문 옆에서 시작해 정동제일교회 앞까지 어른 키만한 성탄 트리 20개가 줄지어 서있습니다. 이 성탄 트리 이벤트의 제목은 ‘조선의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뿐 아니라 초입에는 종이로 만든 십자가 등(燈)에 ‘光照東邦(광조동방)’이란 한자까지 적혀 있지요. 잠시 고개를 갸웃할 법합니다. 저도 길가에 세워진 설명판을 보고서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배재학당(1980년대까지 배재고는 정동에 있었지요) 학생들이 1897년 성탄절 저녁 7시 학당 앞 거리에 수백개의 등을 달고 그 중 가장 큰 십자가 모양의 등에 바로 ‘광조동방’ 즉 ‘빛이 동쪽 나라(조선)에 비친다’는 뜻으로 적었다고 하네요.

덕수궁 돌담길 성탄 트리 축제 초입에 걸린 '광조동방'. 1897년 배재학당 학생들이 걸었던 등불을 재현했다. /CTS

그렇습니다. ‘조선의 크리스마스’ 행사는 한국에 성탄절과 성탄 트리가 어떻게 전래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야외 전시입니다. CTS기독교TV가 성탄을 맞아 2년이 다 되어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친 시민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한국의 성탄절 기념행사의 전래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입니다. 이 행사는 여의도침례교회를 비롯한 교회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저도 이 트리들을 보면서 ‘그동안 성탄절과 성탄 트리가 어떻게 한국에 전해졌는지는 생각도 안 해봤구나’ 싶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지요.

정동 덕수궁 돌담길은 한국에 처음 개신교가 전해진 곳이지요. 구한말 ‘외교타운’이었던 정동엔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 역시 가장 먼저 자리잡았지요. 새문안교회, 정동제일교회 등 한국 장로교와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교회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고요. ‘조선의 크리스마스’ 전시는 한국 개신교의 고향에서 열리는 행사인 셈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설명판을 읽으며 돌담길을 걷다보니 100여년 전 조선 백성들이 성탄절과 성탄 트리를 보면서 얼마나 신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에 도착한 것이 1885년이고, 이후로 선교사들이 많이 파송됐지요. 그리고 선교사들은 당연히 성탄절을 기념했을 테니 1890년대쯤에는 정동을 중심으로 성탄절과 성탄 트리가 꽤 알려졌을 것 같습니다.

덕수궁 돌담길 성탄 트리 축제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산타 클로스' 설명 패널. /김한수 기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보니 아무래도 눈길이 가는 것은 한국에서 성탄절 기념행사의 유래를 설명한 10여개의 패널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성탄 트리’란 설명엔 1894년 명성황후가 선교사 부인들에게 성탄절이 무엇인지 궁금해 물으니 언더우드 부인이 의미를 설명하고 소나무와 초를 이용해 궁중에 성탄 트리를 설치했다고 적혀 있더군요. 또 1896년 12월 24일자 ‘독립신문’은 “내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일이라”는 성탄절 소개 기사도 실렸다고 적힌 설명 패널도 있습니다. 또 어떤 패널에는 성탄 무렵에 땅콩과 과자 등을 선물로 어린이들에게 나눠줬다는 설명도 있고, 1907년엔 어린이들이 성탄 트리에 과자봉지를 장식했다가 성탄 예배를 본 후에 선물로 받아갔다는 설명도 있네요. 그밖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캐롤은 윤심덕이 1926년 녹음한 ‘파우스트 캐럴’이라는 이야기, 전세계 성탄 트리로 가장 많이 쓰이는 나무가 제주도 원산인 구상나무라는 설명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던 시민들도 불 밝힌 성탄 트리를 보면서 친구, 연인끼리 사진을 촬영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트리 사이사이에 놓인 설명 패널도 유심히 읽더군요. 또 중간에 놓인 소원을 적는 코너에서 각자 별과 하트 모양의 메모지에 소원을 적어 트리를 장식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덕수궁 돌담길 성탄 트리 축제 중 소원을 적어 트리를 장식하도록 만든 조형물. /김한수 기자

CTS 관계자는 “시민들 반응이 좋아 서울시청 앞 대형 트리 외에도 매년 덕수궁 돌담길에서 ‘성탄 트리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는 기독교 역사 전공학자들의 자문·고증을 거쳐 다양하고 풍부하게 한국 기독교와 성탄의 역사를 소개하겠다”고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온국민이 너무도 힘든 시기입니다. 서울 시내 나들이 계획이 있으시다면 성탄 트리가 장식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2021년을 마무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행사는 내년 1월 3일까지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