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은 지난 12일 통도사 서운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분열은 공멸을 부른다"며 "타협과 경청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 김동환 기자

“지금 보면 모두가 진심(嗔心·성내는 마음) 덩어리입니다. 상대를 잡아먹으려 하고 적 중의 적으로 대하고. 인욕(忍辱)하며 본래 마음, 진심(眞心)을 지켜야 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宗正) 성파(性坡·85) 스님은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나라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평소 세속의 정치사회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발언을 자제해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나는 반장도 못해봤고 평생 사회생활도 해보지 않고 정치, 경제, 행정은 모른다. 절 공부밖에 안 했다. 수행자로서 본분을 지키겠다”는 입장이었다. 한마디로 “나부터 잘하겠다”는 것이 지론. 그러나 이번 계엄과 탄핵 사태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다. 인터뷰 중엔 여러 차례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 중에 ‘자비심을 가져라, 화합하라’는 말씀이 떠오른다”고 했다.

일러스트=김성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상대에 대해서는 욕심이라고 하고 자신은 사명감이라고 하지요.

“모두가 아전인수(我田引水)하고 있어요. 그래서 문제입니다. 말과 행동 그리고 속마음이 다 다른 거지요. 세상엔 질서가 있습니다. 자동차 수 백 대가 다녀도 정해진 차도를 따라 다니기 때문에 부딪치지 않고 질서가 잡혀요. 직물을 짜는 실[絲]에도 사도(絲道)가 있습니다. 씨줄과 날줄이 얽혀서 조직이 됩니다. 실이 엉클어지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이런 이치는 모두가 알고 있어요. 모두가 아는데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욕심입니다. 욕심 때문에 질서대로 안 하고, 법대로 안 하고. 누가 잘한다,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욕심이 지나친 것이 문제입니다.”

-2022년 3월 말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정 취임 법회 때 미리 배포한 법어 대신 ‘봄이 오고 꽃도 피었는데 우리 마음은 왜 이리 차가운지’라고 즉석 법어를 하셨지요.

“그때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서 새 대통령이 뽑히고 아직 취임은 하기 전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좀 복잡해보였어요. 그런 점이 걱정돼서 ‘봄이 왔는데 인심(人心)은 왜 이렇게 냉각하냐’고 했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후로도 인정은 안 풀린 거예요.”

-그날 ‘나이 칠십, 팔십이 되면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거 싹 다 잊어버리고 초발심으로 돌아가자’고도 하셨지요.

“그래서 ‘준비한 법어를 통도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싹 잊어버렸다’고 한 겁니다. 기존의 것을 고집하면 화합이 안 돼요. ‘내가 잘났다, 훌륭하다’ 이런 기존의 것을 싹 잊어버리고, 나와 너 없이 새출발하자, 화합하자는 뜻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화합은 안 됐습니다.

“그것도 욕심 때문이에요. 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속마음도 다르고. 우리가 과일 나무 한 그루를 키워도 거기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다 있어요. 나무가 말을 못 해도 농부는 나무가 필요한 걸 다 알아요. 그걸 알아듣고 수분과 비료를 주고 병충해도 막아주고. 과일이 맺히지 않는 가지는 영양분만 빼앗아가니 쳐주기도 하고요. 과일 개수도 조절해 과잉 공급이 되지 않도록 하고요. 지도자는 이런 걸 해야 합니다. 대소부동(大小不同)이지만 이치는 하나입니다. 유교에서도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 하고, 불교에서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하지요. 이치는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세계 10위권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는 많은데 전체를 아우르고 화합하고 이끌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한 것인가요.

“여러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며 각각 딴소리를 하는 격이지요. 신재영상막심산(身在嶺上莫尋山), 산에 있으면서 산을 찾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산은 겹겹이 돼 있는데 각각의 골짜기로만 파고들어 산 전체를 못 보는 것이지요.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 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라는 말도 있어요. 천리를 보고자 한다면 한 층 더 올라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시력은 좋은데 욕심이 눈을 가려 보지를 못하고 있어요. 육신의 안목을 넘어선 통찰력이 부족합니다. 전문성, 전문성을 따지다보니 위입서궁(蝟入鼠宮), 고슴도치가 쥐를 잡으러 쥐구멍에 들어갔다가 가시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항상 뒤돌아보라고 강조합니다.”

-사회 전체에 분노, 화가 많습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생각은 천차만별입니다. 불교에서는 청산(靑山)과 백운(白雲)에 비유합니다. 청산은 마음의 주인이고 백운은 객(客)입니다. 청산은 그대로인데 흰 구름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배를 부두에 접안시키는 것에 비유해 보지요. 배는 부두에 닿아야 물건을 부리고 사람이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완충작용이 없으면 배가 깨지든 부두가 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눈만 뜨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생각이 많으면 생각끼리 충돌하고요. 이럴 때 잘못하면 화가 끓어오르지요. 배가 접안하듯이 항상 완충작용이 필요합니다. 가족이든 사회든 관용,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진시심중화(嗔是心中火) 소진공덕림(焼盡功德林) 욕행보살도(欲行菩薩道) 인욕호진심(忍辱護眞心)이라. 성냄은 마음의 불이라, 공덕의 숲을 불태워버린다. 보살도를 행하려 할진대 진심(眞心·참마음)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보면 모두가 진심(嗔心·성내는 마음) 덩어리라. 상대를 잡아먹으려 하고 적(敵) 중의 적으로 대하고.”

그래픽=정인성

-화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인욕(忍辱·욕된 것을 참음)입니다. 인욕은 자꾸 연습하고 훈련하고 복습해야 합니다. 인욕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연습을 하지 않으면 몸에 배지 않습니다. 우리가 운전을 하든 태권도, 유도를 하든 계속 연습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상황이 되면 저절로 몸이 반응하듯이 인욕도 끊임없이 훈련해야 합니다.”

-국회 탄핵 이후의 혼란을 걱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우선은 법대로 차근차근 질서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법조차도 아전인수로 끌어들이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법대로 한다면 (결과가) 똑같아야 하는데, 이쪽도 법대로 한다고 하고, 저쪽도 법대로 한다고 하면서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이쪽 법과 저쪽 법이 다른 건지…. 그래도 법대로 할 수밖에 없지요.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가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염원할 따름입니다.”

-탄핵 심판 과정에서 분열과 갈등도 걱정입니다.

“분열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魔)가 끼어듭니다. 분열은 정말 위험합니다. 정권이 바뀌는 것은 병가지상사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성즉물패(物盛則物敗)라, 성하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라는 유지되니까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그 정도까지 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감수했기 때문에 그나마 넘어갔지요. 충돌이 벌어지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큰 우물에 빠져 나뭇가지 하나에 매달린 형국입니다. 밑에서는 용이 입을 벌리고 있고 위에서는 맹수들이 노리고 있고요. 주위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이럴 때 분열은 파멸입니다. 나라가 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정을 겪어본 우리 세대로서는 그게 걱정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인성 교육입니다. 인성이 메말랐다는 것은 다른 말로 타협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집과 배타성이 강해지면서 타협과 경청이 부족해졌습니다. 타협이 없으면 공존이 안 됩니다. 인간은 인륜(人倫)이 있잖아요. 가정이 있고 이웃이 있고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고. 그런데 그 질서가 무너지고 네가 죽든지 말든지 나만 살면 된다고 하면 모두가 망해요. 공존이 아니라 공멸입니다.”

☞성파 스님

1939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1960년 월하 스님을 은사로 통도사로 출가했다. 1981년 통도사 주지를 지낸 이후로는 서운암에 머물며 도자기, 차(茶), 옻, 천연염색 등 사찰을 중심으로 전승돼온 전통문화를 가꾸는 데 앞장서 왔다. 2018년 영축총림(통도사) 방장에 추대됐고, 2021년 12월 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宗正)에 추대됐다. 2022년 3월 종정 취임 후에도 40여 년간 지내온 서운암에 머물며 옻칠민화 등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