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악이 크고 곱더라. 봉우리가 수려하더라. 이것이 모두 조선 민족이 편안하게 살고 성장하던 수천 년의 아름다운 땅이더라. 그러나… 곳곳마다 이 세상의 험한 풍상을 겪으면서 오히려 암담한 앞길에 슬퍼하는 수많은 동포를 만날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무언의 비극은 끊일 새가 없더라.”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역사학자였던 민세 안재홍(1891~1965)이 1926년 삼남 지방을 여행하며 쓴 이 기행문은 여행의 소감에 그치는 글이 아니었다. 황우갑(61·사진) 민세 안재홍 선생 기념사업회 사무국장(민세아카데미 대표)은 민세의 글을 현대문으로 풀어내 민세 60주기에 맞춰 ‘영호남 기행 1’(선인)을 출간했다.
“일제 치하에 고통받는 민중을 직시한 현장성과 시대성, 국토의 역사와 민족에 대한 애정, 거기에 해박한 고전의 인용이 더해진 수준 높은 문학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주성과 한산도 등 전쟁 사적지를 많이 다닌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민세의 이 기행문은 조선일보에 1926년 4월 18일부터 6월 2일까지 연재됐던 것이다. 2020년 조선 뉴스 라이브러리(newslibrary.chosun.com)가 개설된 뒤 기행문의 존재를 알고 자료를 모아 책으로 엮어낼 수 있었다. 황 국장은 고려대 국문과를 나와 숭실대에서 안재홍의 성인 교육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광수의 기행문이 ‘심미적 글쓰기’, 최남선 기행문이 ‘이념적 글쓰기’였다면 안재홍의 글쓰기는 ‘실제적 글쓰기’라 할 수 있다”고 황 국장은 말했다. “민세에게 여행이란 당대의 사회적 상황을 온몸으로 깨닫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황 국장은 다른 곳에 흩어진 민세의 기행문을 모아 ‘영호남 기행’ 제2권을 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