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11월 20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주간 일반알현에서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AF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11월 20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주간 일반알현에서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AF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폐렴 증세로 지난달 14일 입원한 지 벌써 3주를 넘겼습니다. 아마도 이 기간 교황청 관계자와 신자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종교 담당 기자 혹은 교황 기사를 담당하는 기자들 역시 교황의 건강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 같습니다. 위중(critical)하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로는 교황에 관한 기사를 업데이트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 같고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생입니다. 만 나이로 88세를 넘긴 고령(高齡)입니다. 이 연세라면 폐렴은 위험하지요. 거기다 패혈증 위험까지 거론됐으니 정말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병세가 호전되는 것 같습니다. 전화 통화도 하고, 일상적인 결재도 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어쨌든 지난 2013년 교황 취임 이후 3주 넘게 입원한 일은 처음이니 모두가 걱정스럽게 경과를 지켜보고 있지요.

저는 이번 교황의 입원 과정을 보면서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병세 브리핑’입니다. 교황청 공보실은 지난달 14일 교황이 입원한 직후 “약간의 열(slight fever)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로 매일 아침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교황의 병세를 간략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없던 일입니다. 과거 교황의 병세는 여느 국가 원수와 마찬가지로 ‘비밀’ ‘극비’ ‘보안사항’이었습니다. 과거 요한 바오로2세나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경우에도 선종하기 직전까지 정확한 병세나 건강 상태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날 선종 소식이 전해지곤 했지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자신의 백신 접종 여부를 공식 확인하기를 원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지난달 14일 입원 후 17일까지는 ‘안정적(stable)’이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18일엔 ‘양쪽 폐에 폐렴이 발생했고, 상태는 복합적(complex)’라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이어 21일에는 ‘치료에 반응하고 있지만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는 주치의 발표가 있었지요. 이때부터 외신에선 ‘위중’이란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당시 주치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전 세계 언론 앞에서 40분 동안 교황의 건강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의료진은 교황이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지는 않지만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난 것도 아닌’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과장도 없지요. 이 회견에서 주치의 알피에리 박사는 “교황님은 자신의 건강과 관련해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교황청이 매일 교황의 병세를 공개한 이유가 바로 교황의 의지였다는 것이죠. 사실 교황은 공인이기도 하지만 병세는 민감한 개인 정보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밝히기를 거부하면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교황은 공개를 결심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치의들이 지난달 21일 로마 제멜리병원에서 교황의 건강상태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바티칸뉴스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교황의 지시처럼 교황청의 발표는 상당히 구체적이었습니다. ‘양쪽 폐에 폐렴 진단’ ‘호흡 곤란’ ‘고유량 산소 치료’ ‘인공호흡기 착용’ ‘혈소판 감소증’ ‘수혈’ ‘신부전증’ 등의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인공호흡기의 경우에도 튜브인지, 코와 입을 덮는 마스크형인지까지 밝혔습니다. 그러던 지난달 26일과 27일 드디어 브리핑에서 ‘위중’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경미한 호전’이란 표현이 등장했지요. 그렇지만 곧바로 지난달 28일에는 다시 기관지 경련과 구토 증상을 보였다는 소식이 나왔지요. 그렇게 고비를 하나씩 넘기던 교황은 지난 6일엔 병상에서 육성 녹음을 공개했지요. “광장에서 내 건강을 위해 기도해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여기(병실)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겠다. 신의 가호와 성모 마리아의 보호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녹음한 육성은 약간 숨이 찼지만 교황이 위중한 상태를 벗어났음을 보여주기엔 충분했습니다.

24일 교황이 입원한 제멜리 병원에서 취재중인 외신들 /바티칸=정철환 특파원

이 기간 저도 바티칸뉴스 속보를 통해 수시로 교황청의 브리핑을 봤습니다. 어떤 날은 “밤새 잘 주무셨다(Pope slept well over night)” 같은 한 줄짜리 브리핑도 있었고, 설명이 조금 더 긴 날도 있었습니다. 발표 패턴을 보면 한 줄짜리 브리핑이 나온 날은 위중하지만 밤을 넘겼다는 뜻인 것 같고, 설명이 좀 긴 날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겪었지만 괜찮다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발표가 짧든 길든 내용은 전혀 과장이 없었고, 불필요한 희망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있는 느낌입니다.

자신의 병세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라고 한 교황의 지시는 쓸데없는 억측과 가짜 뉴스를 막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유명인의 공개 활동이 줄어들면 바로 건강 이상설을 비롯한 온갖 억측과 루머가 돌기 마련이지요. 워낙 비밀이 많은 교황청은 온갖 소문의 산실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교황청이 앞장서서 매일 교황의 병세를 공개하니 가짜뉴스나 억측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항은 취임 후 여러 분야에서 교황청과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했지요. 전체적인 방향은 ‘비밀주의’를 ‘투명화’로 바꾸는 것이죠. 이번 자신의 병세 공개 지시도 그런 개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누가 교황이 되더라도 건강 상태 공개라는 대세를 거슬러 다시 ‘비밀주의’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교황은 병석에서도 개혁을 지휘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