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봉호 장로’는 목사들도 두려워하는(?) 존재입니다.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와 한성대 이사장, 동덕여대 총장, 고신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고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경실련 등의 창립에 참여한 분이지요.
일반적으로는 ‘손봉호 교수’로 많이 알려졌지만 개신교계에서는 ‘손봉호 장로’로 널리 알려졌지요.
목사님들이 손 장로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가 원리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사에 갔다가 주최한 목사가 “오늘 식사를 뷔페식으로 준비했는데 손 장로님이 ‘사치스럽다’고 하시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손 장로는 기독교 윤리에 입각해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끼지 않습니다. ‘윤리적인 크리스천’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회적 문제가 있으면 언론은 그의 의견을 듣거나 인터뷰를 하곤 하지요.
그런데 남을 비판하려면 자기 자신이 완벽하게 깨끗해야겠지요? 남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보면서 “그래, 당신은 얼마나 깨끗한지, 얼마나 모범적으로 사는지 보자”고 눈에 불을 켤 테니까요.
최근 나온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우리학교)는 손 장로의 회고록입니다. 경북 영일(현재의 포항) 출신으로 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중학생 시절 신앙을 갖게 된 과정, 서울대 진학과 유학 시절 이야기, 시민운동에 나서게 된 과정 등을 유머를 가미해 술술 읽히도록 정리했습니다. 신앙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많이 적지는 않았지만 모든 에피소드의 바탕에 깔린 것은 기독교 신앙입니다. 목사가 될 꿈도 있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 만난 목사님이 너무나도 완벽한 분이어서 도저히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고 하네요. 책은 자신의 실수나 약점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주일성수(主日聖守)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권유로 손 교수가 다니기 시작한 경주교회는 고신 교단 소속이었습니다. 고신 교단은 일제 때 신사 참배를 거부했으며 주일성수(주일을 거룩하게 지켜 예배 드리고 영적 안식을 취한다는 뜻) 등 성경의 명령을 철저히 순종할 것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손 교수는 월요일에 시험이 있어도 주일에는 절대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한번은 성탄을 앞두고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시, 수필, 간증 등을 엮어 작품집을 내기로 했답니다. 당시 인쇄 방법은 등사. 등사판에 잉크를 묻히고 롤러로 밀어 인쇄해야 했지요. 어느 토요일 저녁 회원들이 열심히 등사를 하던 중 한두 장만 더 밀면 끝나는데, 12시가 됐답니다. 주일로 넘어간 것이지요. 모두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데 누군가 마루에 나가더니 “마루 시계는 아직 12시가 안 됐어!”라고 소리쳤습니다. 모두가 손 교수를 쳐다보며 “회장이 결정해!”라고 했다지요. 손 교수는 엄숙하게 선언했답니다. “마루 시계는 우리를 시험하기 위한 마귀의 도구야!”
고교 진학을 위한 신체검사가 일요일에 잡혀도, 대학입시 수험표 배부가 일요일에 잡혀도 손 교수는 가지 않았답니다. 그런데도 다행히 시험을 칠 수 있었고 합격했고요. 대학 합격자 발표도 일요일이었는데 물론 손 교수는 발표를 보러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 교수는 책에서 “좀 유치했고 좀 지나치게 율법주의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순수했던 그때의 신앙이 새삼 그립다”고 적었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 “너 거기 있을 줄 알았어!”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유학 시절. 이 학교는 1년에 한 번씩 전교생이 학교를 위해 청소, 풀 뽑기, 페인트 칠하기 등 봉사를 하는 전통이 있었답니다. 손 교수가 조장을 맡은 팀은 인도(人道)에 난 잡초 뽑기 담당. 7~8명의 조원이 열심히 뽑았지만 다른 조가 일을 마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답니다. 마침내 점심시간. 아직 2~3m가 남았지만 조원들은 교수 부인이 구워주는 맛있는 빵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버렸습니다. 손 교수는 “10분쯤이면 다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혼자 해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정신없이 풀을 뽑고 있는데 “너 여기 있을 줄 알았어!”라는 학생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네요. 식사 시간이 돼도 손 교수가 오지 않자 그를 데리러 온 것이죠. 손 교수는 “그것은 내가 평생 들은 칭찬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내가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해주기 때문”이라며 “그런 칭찬은 지금도 듣고 싶지만 아직 하나의 채찍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회의비 100만원
손 교수는 한때 20개 가까이 이사장, 이사 등의 직함을 맡은 적도 있습니다. 주로 어려운 이들을 돕고 후원하는 자리였지요. 돈을 받기보다는 후원을 받아오거나 자기 돈을 내야 하는 자리였고요. 그런 가운데 한번은 재벌이 운영하는 복지재단 이사를 맡게 됐다고 합니다. 회의는 1년에 한 번인데 고급 호텔에서 비싼 식사를 하고 회의비도 주는데 거금 100만원이었답니다. 회의비 100만원은 손 교수에게만 큰돈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고위직을 역임한 모든 이사가 회의에 빠지는 적이 없었다고 하네요.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참석했답니다. 손 교수 역시 “만약 내가 팔이나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더라면 콜택시를 타고라도 참석했을 것 같다”고 썼습니다.
어느 날 “나의 참석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한 시민운동 단체의 모임과 100만원짜리 이사회가 겹치게 됐답니다. 며칠간 끙끙거리다가 그 시민 단체 모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네요. “내가 돈 100만원에 그렇게 끙끙거린다는 사실, 그리고 돈이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의 불결한 속을 더 훤히 드러냈고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했다. 강연, 설교, 방송, 칼럼에서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거룩한 소리는 전매특허라도 받은 것처럼 떠들어 놓고는 돈 100만원을 그토록 아까워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위선적으로 보이는지... 차라리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말은 이미 뱉어버렸고 녹화되었거나 인쇄되었으니 취소할 수도 없고!”
한동안 다시 낑낑거리던 그는 결단을 내렸답니다. 이사회에 불참을 통보하고 시민단체 모임에 간 것이죠. “유혹과 자존심 싸움에서 자존심이 이겼다고 내심 좋아했다. 그럼에도 100만원은 아까웠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후 우연히 은행 통장을 살펴보는데 회의비 100만원이 입금돼 있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돌려보냈어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역시 내 속이 완전히 청소되지 못한 것이다”라고 적었다.(손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용은 회의비가 아니라 이사로 활동한 데 대한 사례였다”고 했습니다.)
#하얀 거짓말
손 교수는 수십 년간 ‘정직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렇지만 책에서는 자신도 ‘하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군 생활 중에 있었던 일인데요. 추운 겨울날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 소총도 초소에 방치한 채 막사에서 화투를 치다가 소대장에게 걸렸다고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소대장은 병사들의 옷을 다 벗게 하고 막사 바깥 추운 마당에 집합시켰답니다. 그리고는 손 교수에게 “우물에 가서 물 퍼와!”라고 명령했답니다. 병사들에게 찬물을 끼얹겠다는 것이었죠. 손 교수는 우물가를 서성이다가 빈 통을 들고 돌아와 “우물이 꽝꽝 얼어서 물을 길어올 수 없었다”고 거짓 보고를 했답니다. 소대장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야전삽 자루로 엉덩이를 몇 대씩 때리고 사건을 종결했다네요. 혹시라도 찬물을 뒤집어쓴 병사가 심장마비라도 일으킬 뻔한 일을 막은 것이지요.
손 교수는 “나는 지난 수십 년간 정직 운동을 펼쳤다. 우리 사회의 최대 약점이 투명성 부족이라고 지금도 강조한다. 그런데도 나는 사실과 다르게 말하는 것은 모두 나쁘다고 가르친 칸트에게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직간접으로 다른 사람과 사회에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사실과 다르게 말해도 비도덕적이라 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라며 “그 추운 날 밤 나의 거짓말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고, 자칫하면 생겨날 뻔했던 큰 부작용들을 막았으므로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적었습니다.
손 교수는 통화에서 “회고록이란 게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불리한 내용은 감추기 마련이라서 과대 포장된 것 아닌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어려서 가난했지만 부모님이 수준 이하의 행동은 하지 않으셨는데 그런 무언의 가르침과 자존심도 작용해 원칙대로 살려고 했던 것 같다”며 “원칙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지만 항상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는 자책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손 교수는 머리말에서 “교훈이나 감동을 드리지 못하면 재미라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출판한다”고 적었는데 실제로 재미뿐 아니라 교훈과 감동이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