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망교회 류영모(71) 원로 목사에게 소년 시절 부활절은 ‘세례 반납 시도’(?)로 기억된다. 그가 서너 살 무렵 고향(경남 거창) 집 바로 옆에 큰 집(예배당)이 세워진 것이 신앙을 접한 계기다. 중학교 3학년 부활절 때 세례를 받은 그는 2년 후 부활절 세례식을 위해 교회를 찾아온 목사님에게 세례를 반납하겠다고 떼를 썼다. 고교 1학년 때 방황하며 술·담배를 접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사연을 듣고 껄껄 웃던 목사님은 “우리는 변덕이 심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 주신 선물은 절대 빼앗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 심장에 콱 박힌 말씀이었다. “아, 하나님은 정말 좋은 분이구나.”
부활절(20일)을 맞아 신앙의 초심(初心)을 간직한 류 목사에게 부활의 의미를 들었다. 인터뷰는 15일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개신교 솔선수범 운동 ‘나부터 캠페인’의 베이스캠프인 경기 고양시 드림하우스에서 진행했다.
−올해 부활절은 개신교 한국 선교 140주년에 맞는 부활절입니다. 선교 140주년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5000년 역사에서 가장 암울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복음의 빛이 들어온 역사적 사건입니다. 성경적으로 ‘140’이라는 숫자는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오는 회복의 숫자 70년을 두 번 더 한 것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선교 후 첫 번째 70년(1955년)은 6·25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피폐한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과제였지요. 두 번째 70년인 올해는 영적인 파괴, 갈기갈기 찢겨진 사회 파괴, 정신 파괴, 희망 파괴의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고 회복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입니다. 그런 의미를 생각하며 부활절을 맞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에게 부활절은 어떤 의미인가요?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지요. 예수님 탄생은 하늘이 땅으로 온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땅에 와서 복음을 만들고 전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지요. 사람의 몸을 입었던 예수님이 다시 하나님이 되신 것이 부활입니다. 말하자면 시간이 다시 영원으로 돌아가는, 그래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는 희망을 만든 사건이 부활이지요.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에는 교리, 신학, 이념, 지향성이 달라도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겁니다.”
−모든 종교의 위기라고 합니다.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고 하지요? 탈종교화는 ‘수축 사회’의 일반적 현상입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까지 겹치면서 이단, 신비주의 심지어는 무속까지 ‘영성’이란 이름으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 극복을 위해선 복음, 부흥, 전도의 정의(定義)도 재해석해야 합니다.”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나요?
“가령 물량주의적 교회 성장은 진정한 부흥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낮아진 겸손, 약자들과의 동행 등 예수님이 가셨던 그 길을 회복하는 게 부흥이지요. 교회 성장이 하나님 나라 성장으로 가야지 교회 규모의 양극화로 가는 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치명적 실수는 ‘십자군 정신’입니다. 이념이 신앙이 된 확신이 얼마나 무서운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린아이까지 전쟁터에서 죽으면 천국에 좋은 자리가 있다는 이런 ‘페이크 복음’이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십자가 정신’은 고난을 자처하는 정신입니다. 개인, 공동체, 교회, 국가적인 잘못을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회개하면서 부활의 희망의 빛을 새로워짐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 부활과 십자가 신앙입니다.”
−‘십자가 정신’이란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내 안에 그런 진리와 품성이 조금씩 싹터옵니다. 씨앗은 눈에 안 보이지만 심어 놓으면 100배, 10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내가 먼저 손해 보고, 고난의 길을 가고,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있는 곳으로 가고요. 그것이 크리스천이 가야 할 길이지요.”
−목사님 유튜브 채널명이 ‘세상의 중심에 서기’입니다. 중심이란 무엇인가요.
“기독교 신학은 어느 한쪽에 서서 ‘이게 진리다, 복음이다’ 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입니다. 양쪽의 장점을 다 인정하면서 양쪽의 단점을 개혁해 나가는 것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보수와 진보,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구분을 넘어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바로 중심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교회가 어른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답다는 것은 약자들, 숨소리도 못 내는 어려운 사람을 대신해서 말해주는 것이죠.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는 것이 아니고요. 지금 우리는 ‘아령 사회’입니다. 양극단이 너무 비대해져 버렸어요. 자칫하다간 손잡이가 부러질 지경입니다. 이렇게 양극단으로 갈라진 사회에서 교회는 중심의 손잡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나부터 포럼’을 이끌고 계시죠.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시작한 캠페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피장파장이에요. 거짓말하고 싸우고. 기독교가 세상에 바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이게 정도(正道)다, 정의다, 공적인 선(善)이다’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죠. ‘나부터 포럼’의 모토가 빛과 소금입니다.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자는 취지이지요. 빛의 속성은 분리이고 소금은 동화(同化)입니다. 빛은 어둠으로부터 분리되고 소금은 녹아서 맛을 내지요. 즉 빛은 절대적 초월성을 의미하고 소금은 세상 속에 녹아드는 내재성을 뜻합니다. 크리스천은 초월적 내재성을 가져야 합니다. 배는 물 위에 떠 있지만 물이 배 위로 넘어오면 가라앉지요. 그런 절묘한 조화가 필요합니다. 세상 속에서 살지만 초월적 진리,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죠. 나부터 운동은 그런 정신입니다.”
−곧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할까요.
“성경에선 홍해의 기적이 나오지요. 그렇지만 이번 선거에선 통합, 화합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증오와 분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교회도 정치에 이용당하거나 동원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어느 정파이든지 내부에서 싸우면 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때 평강은 개인적 건강과 심리적 안정, 영적 안정, 공동체의 건강성, 국가적인 건강성,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건강성 등 통전적 평강을 얘기합니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민족입니다. 절대로 꺾이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평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류영모 목사
경남 거창 출신으로 장로회신학대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0년 개척한 한소망교회를 교인 1만6000명 규모의 교회로 성장시켰고 작년 원로목사로 은퇴했다. CBS 이사장과 예장통합 총회장,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냈고 현재 개신교 솔선수범 운동인 ‘나부터 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