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이유 없이 나만 미워하는 동료 때문에 고민일 때. 월급은 안 오르는데 집주인은 야박하게 월세 올릴 때. 언젠가부터 남편, 혹은 아내와 대화가 단절됐을 때. 살다 보니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여전히 인생살이가 힘들다면, 여기 당신이 꼭 봐야 하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서른살 청춘들의 도시생활 애환을 그린 드라마 ‘겨우, 서른’이다.
중국에선 출시하자마자 이틀 만에 시청률 1%를 기록했다. 중국 인구가 14억명이니 1400만명이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같은 시간 TV 앞에 앉았다는 얘기다. 온라인 조회수도 67억회를 기록하면서 작년 하반기 중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작품으로 남았다. 일단 작품성은 검증된 셈이다. 놀라울 만큼 세련된 이 드라마는 중국 드라마에 대한 흔한 편견도 금세 깨버린다. 이미 우리나라 ‘어른이’(어른+어린이)들에게도 인생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으며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7위에 올랐다.
상하이에 사는 올해 갓 서른이 된 동갑내기 여자 3명이 주인공이다. ‘상하이 드림’을 품고 시골에서 올라온 명품매장 직원, 더 높은 상류층 진입을 꿈꾸는 내조의 여왕, 다정하지 못한 남편 때문에 신혼 생활이 불행하기만 한 아내. 나이와 사는 도시는 같지만, 처한 환경은 너무나 다른 세 사람이 일, 사랑, 가족 문제로 얽히고설키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주요 스토리다.
◇결혼 미뤄가며 일에 올인해도 승진은 산 넘어 산
첫 번째 주인공 왕만니(강소영 역)는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의욕 넘치는 판매사원이다. 연애도, 결혼도 미루고 어떻게든 성공해 보려고 하지만,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받는 월급 절반은 월세로 나가고, 지방에 있는 부모님은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안달한다. 그런 왕만니에게 신이 내린 기회가 찾아온다. 명품 매장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한 행색을 하고 찾아온 여인. 동료 직원들은 “저런 손님은 시간 낭비”라며 피하지만, 왕만니만은 진정성 있게 안내한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그 손님이 매장에서도 최고가에 해당하는 100만위안(약 1억7000만원)대 보석 세트를 사겠다고 예약을 건다.
그야말로 대박 실적을 눈앞에 둔 왕만니. 하지만 그런 그녀를 질투한 동료 직원이 방해 공작을 벌인다. 구매계약 당일, 왕만니가 바르는 립밤에 몰래 복숭아 성분을 묻혀둔 것이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왕만니는 계약을 코앞에 두고 병원으로 보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통증으로 직장에서 쓰러지는 일까지 생긴다. 손님이 언제 올지 몰라 소변을 참아온 탓에 급성 신장염에 걸린 것이다. 남자친구도 없는 그녀를 챙겨주는 건 가족뿐. 늦은 시간 그녀가 걱정돼 전화한 엄마에게 왕만니는 “지금이 몇신줄 아느냐. 잠이나 자라”고 모질게 말한다. 하지만 통화를 끊고선 눈물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중국판 펜트하우스? 끝없는 상승욕의 결말은
구자(동요 역)는 현모양처의 표본처럼 보이는 전업주부다. 남편은 불꽃놀이 제작 회사를 차린 사장님이고, 유치원 입학을 앞둔 귀여운 4살짜리 아들도 있다. 하지만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구자는 더 높은 상류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큰돈을 대출받아 상류층 아파트로 이사 간 그녀는 아들을 명문 유치원에 보내는 게 목표다. 명문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선 면접도 부모가 본다. 사회적 지위나 재력이 어떻게 되는지, 유치원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영어로 설명한다. 그런데 하필 아들이 면접 중에 사고를 친다. ‘나라의 수도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수도는 화장실에 있다’면서 화를 내고 면접 선생님을 깨물어버린 것이다.
이대로는 유치원 입학이 좌절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구자는 입주한 아파트 21층 펜트하우스에 유치원에 입김 좀 넣을 수 있는 여사님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아낸다. 중국판 펜트하우스 느낌이 살짝 난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케이크도 만들어 바치고, 망원경 보는 법도 공부해 알려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점검으로 멈추자, 21층까지 뛰어올라가 여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고 갔던 슬리퍼를 대신 넘겨주고 1층까지 맨발로 부축해 내려온다. 그런데 그 정도로도 부족했는지, 이 여사는 “우리 아들에게 소행성을 선물해 주고 싶다. 소행성을 살 방법을 알아오면 입학에 힘써주겠다”고 한다. 우주에 떠 있는 그 소행성 말이다.
회사에선 젊은 여직원이 남편의 환심을 사려 하면서 구자의 신경을 긁는다. 야근할 때 직접 도시락을 싸와서 남편과 나눠 먹고는 “사장님이 날 미워할까 봐 걱정”이라며 눈물 섞인 어리광까지 부린다. 눈치 없는 남편은 이런 얘기를 다 구자에게 한다. 구자는 가정에 대해 “이곳은 나의 집이자 내 전쟁터”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완벽주의자인 구자는 남편과 아이를 챙기면서 온갖 위기에서도 어떻게든 기지를 발휘하지만, 매번 버거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럴 거면 왜 결혼했을까,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중샤오친(모효동 역)은 신혼인 남편과 관계를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중샤오친은 고양이를, 기자인 남편은 각종 열대물고기를 키운다. 하지만 신혼인 두 사람은 반려동물에게 쏟는 만큼의 애정도 서로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퇴근하고 4시간째 물고기 어항 관리에 열중하는 남편에게 한 시간만 자신과 놀아달라고 애원하는 중샤오친. 설득도 해보고, 애교도 부려보지만, 끝내 “가서 드라마나 보라”는 남편. 결국 중샤오친은 “따로 놀 때는 그렇게 신나 하면서 나랑은 왜 한 시간도 같이 못 보내는 거야. 잠도 물고기랑 자!”라며 성질을 내고 만다.
남편은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핑계로 5년 동안 아이도 갖지 말자고 한다. 하지만 대개 인생이 그렇듯, 뜻하지 않게 아이가 생기고 만다. 중샤오친은 내심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만, 남편은 당초 계획에 따르기 위해 아이를 지우자고 한다. 야속한 남편에게 받는 상처는 커지기만 한다. 어쩌면 부부가 키우는 물고기와 고양이는, 그만큼 서로가 상극이라는 걸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서로에 대한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표현이 서툴러서, 때로는 타이밍이 안 맞아서 오해와 서운함이 쌓여간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중샤오친은 마치 화면 너머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서른은 처음이다
이 드라마의 중국 원제는 ‘삼십이이(三十而已)’다. 공자가 “서른 살에 뜻을 바로 세웠다”며 말한 삼십이립(三十而立)에서 한 글자를 바꿔 ‘겨우 서른일 뿐인데’라는 뜻으로 패러디했다. 공자와 달리 평범한 현대인에게는 훨씬 위안을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나 서른은 처음이니까, 어른으로 잘 사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큰 욕심 없이 평범하게만 살고 싶을 뿐인데도, 이겨내야 할 과제들이 끊임없이 던져진다. 누군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다가도, 백마 탄 왕자는 없지 않을까 체념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서른이 아닌가 싶다.
상하이 생활이 서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한편으론 성공에 대한 꿈과 욕망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화려한 도시지만, 비싼 물가, 비싼 집값, 치열한 경쟁으로 버티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게 한다는 점에서다. 그곳에서 아등바등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흡사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처럼 보여서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된다. 그래도 주인공들이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내면서 “잘살고 싶다”는 고민을 붙드는 모습은 우리에게 왠지 모를 위안을 준다. 잠시 사는 게 버겁게 느껴질 때는 맥주라도 한 캔 마시면서 이 드라마의 세계에 빠져보라고 추천하는 이유다.
자극적인 매운맛 콘텐츠가 판치는 요즘,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 드라마가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깨알 디테일이 돋보이는 일화들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한 시즌이 무려 43편이나 되지만, 언제 다 보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단 정주행을 시작하고 나면 “볼 수 있는 회차가 많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요 드라마l 중국 l 42~47분•43회
등급 15세 관람가
특징 어른이들 공감대 자극하는 힐링 드라마
평점 IMBD⭐ 7.2/10 왓챠피디아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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