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비트코인의 거래가 막 태동했을 때의 1비트코인은 2원 정도에 불과했다.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비트코인 피자데이’다. 2010년 미국의 한 비트코인 보유자가 커뮤니티에 “피자 두 판 보내주면 1만 비트코인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5800억원에 해당한다. 그는 2900억원짜리 피자를 먹은 셈이다.

10여년이 지나고 이제 가상자산 세계는 그들이 정말 고대하던 순간을 맞았다. 가상에 머무르며 그 가치를 두고 쓸모없다던 비트코인이 드디어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이다. 지난 1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 현물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승인된 ETF 상품은 총 11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포함해 피델리티, 프랭클린, 아크인베스트 등이 내놓은 ETF가 포함됐다. ETF로 통칭하고 있지만 SEC는 공식적인 명칭을 비트코인 현물 ETP(Exchange-Traded Product)로 명시했다.

현물이 아닌 선물 상품은 승인받은 지 꽤 됐다. 2021년 비트코인 선물 ETF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상장돼 거래돼 왔다. 비트코인 선물지수를 기초로 하는 상품인데 실제 비트코인 가격에는 영향을 크게 주지 못했다. 하지만 현물 ETF는 다르다. ETF로 유입돼 온 자금이 실제 비트코인 구매로 연결돼야 한다. 기관들의 큰돈이 비트코인으로 향하게 된다는 점 때문에 가상자산 시장은 들썩일 수밖에 없다.

승인 주체가 미국이기에 사실상 글로벌에서 공인받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 ETF의 약 20% 정도는 미국에 상장돼 있다. 글로벌 ETF 일평균 거래대금의 약 80%가 미국 시장에서 거래된다. 시장 규모로 봐도, 접근성을 봐도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다는 이 상징성은 클 수밖에 없다.

‘블랙록 등 월가 큰손들에게 굴복한 셈’

ETF라는 방식은 직접 비트코인을 사는 것에 심리적 장벽을 가진 사람들이 보다 쉽게 다가가도록 해준다. MTS나 HTS 등을 통해서도 비트코인 ETF를 거래할 수 있다. 가상자산과 전통 금융이 시스템적으로 일부 통합된 것이다. 글로벌 규제기관의 승인, 금융기관이라는 믿을 만한 중개처가 생긴다는 건 ‘쓸모없는 물건’ 취급을 받던 비트코인의 신뢰도를 높인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ETF의) 인지도 선점을 위한 마케팅 경쟁이 시작되면서 개인투자자 관심도가 높아질 것이다. 투자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점은 일종의 혁신이다”라고 설명했다.

궁금증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단 비트코인을 멀리해온 개인투자자들로서는 ‘비트코인이 좋은 투자처가 될 수 있을까’라는 소박한 의문이 든다. 비트코인 시장에 새로 뛰어든 플레이어가 한층 격상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블랙록과 같은 월가의 큰손들이 뛰어들었는데 이는 ‘비트코인의 정신’에 비춰보면 역설적이다.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는 금융기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비트코인을 세상에 내놨다. 2008년 금융위기와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게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 백서 초록의 첫 문장은 이렇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 대 개인 버전으로 한쪽에서 다른 쪽에 직접 전달되는 온라인 결제를 실현한다.”

월가의 기관들은 나카모토가 없애고 싶어 하던 바로 그 ‘금융기관’들이다. 가상자산의 등장을 합리화했던 가장 큰 이유는 ‘탈중앙화된 미래’였지만 이제는 제도권에 들어오면서 바라던 미래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탄생의 이유를 거스르면서도 비트코인이 월가의 부름을 기다렸던 건 ‘가격’ 때문이다. 블랙록이 지난해 6월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서를 SEC에 제출했을 때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런 말들이 나왔다. “비트코인의 존재 이유에 블랙록이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ETF 승인을 두고 가상자산이 전통 금융기관에 패배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간 가상자산 업계는 변덕스러운 비트코인 가격에 매우 취약했다. 시장이 침체되면 관련 생태계는 투자자의 관심을 잃는다.

알트코인 가격은 비트코인 가격과 연동해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비트코인이 재채기를 하면 알트코인은 몸살을 앓았고 생태계 전반이 영향을 받았다. 지난해 비트코인 가격이 두 배 이상 상승한 것은 블랙록의 신청서가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월가의 움직임에 가상자산 가격이 오르니 업계나 투자자 모두 불평하지 않았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장은 ETF 승인을 발표하면서도 “비트코인을 승인한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photo 뉴시스

비트코인 과잉 수요의 논리

이제 돈을 쥔 월가가 참전했으니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거라는 기대가 크다. 다수 전문가들의 예측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금’의 사례와 비슷하게 흘러갈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2004년 11월 금ETF가 처음 나왔을 때 당시 ETF 업계 분석가로 유명했던 짐 위안트 ETF레포트 설립자는 “금ETF는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자산 선택지를 열어주며 대폭발을 일으킬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그의 전망은 옳았다. 2004년 금ETF가 미국에 등장한 뒤 금값은 이후 7년간 4배 비싸졌다. 현재 금ETF에는 1000억달러 이상이 조달된 상태다. 금을 직접 사서 금고에 보관하는 것 대신 클릭 한 번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접근성, 이 때문에 늘어난 금 수요가 가져온 결과다. 글로벌 투자은행 스탠다드차타드는 “금보다 더 짧은 기간에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본다.

ETF 탄생으로 가격이 오른다는 논리는 과잉 수요 때문에 성립한다. 비트코인의 총 발행한도는 2100만개다. 현재 약 1960만개가 채굴됐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예측처럼 최대 1000억달러의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로 향할 경우 이는 비트코인 시가총액(약 8300억달러)의 8분의1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휴면코인이라는 변수가 있다. 5년 이상 지갑에 담겨 이동하지 않은 비트코인은 앞으로도 이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 보유자거나 지갑의 비밀번호를 잃어버려서 못 찾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글래스노드는 비트코인 시가총액 중 30%가량이 이런 휴면코인이라고 파악한다. 비트코인 시장이 활성화되는 데서 빼야 할 분량이다.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규모는 약 5840억달러 정도다. 그리고 여기에는 비트코인 공급량을 통제하고 있는 큰손들이 존재한다. 업계에서 통칭 ‘고래’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1000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유한 고래의 주소는 약 1500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전체 공급량의 약 40%에 해당한다. 고래가 지닌 물량도 월가가 접근하기 쉽지 않은, 통제당하는 물량이다. 1000억달러라는 자본은 들어오지만 막상 확보할 수 있는 비트코인은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이라면, 수요가 폭발할 거라는 예측은 타당해 보인다.

막상 1월 11일부터 현물 ETF 거래가 허용된 뒤 비트코인 가격은 일주일간 떨어졌다. SEC의 승인이 떨어진 지난 1월 10일 4만7000달러를 목전에 뒀던 1비트코인 가격은 1월 17일 4만2000달러대에 진입했다. 10%가량 하락한 셈이다. ‘재료가 소진됐다’ ‘이익 실현이다’라며 여러 이유가 제기되지만 가장 유력한 설명은 기관의 ‘손바뀜’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받기 전 비트코인 주요 투자처 중 하나는 미국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이 운용하는 ‘비트코인트러스트(GBTC)’라는 신탁 상품이었다. 기존의 신탁을 ETF로 전환한 폐쇄형 상품인데, 수익에 대한 세금에는 혜택이 있지만 수수료가 1.5%나 된다는 게 단점이었다.

“자산가들, 비트코인 보유 움직임 있었다”

그런데 비트코인 현물 ETF가 출시된 뒤 금융기관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수수료를 낮추거나 한시적으로 받지 않고 있다. 블랙록의 수수료는 0.25%에 불과하고 아크인베스트는 첫 6개월간 10억달러까지 수수료 면제를 선언했다. 낮은 수수료에 매력을 느낀 GBTC 고객들이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비트코인 매도압력이 높아졌다.

ETF 승인 후 그레이스케일이 거래소로 옮긴 비트코인은 9000개다. 약 5100억원어치의 물량이다. 거래소로 옮긴 건 팔기 위해서니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가격 하락을 이끌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레이스케일의 매도세가 안정되면 다시 가격이 오를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은 이미 어느 정도 ‘자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증권사 PB는 “자산가들 사이에서 비트코인은 반지하쯤에 있었는데 이제 1층으로 올라와 햇빛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해 중반부터 자산가들 사이에서도 비트코인 현물을 약간이라도 보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부동산 등이 주춤하면서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할 때 비트코인도 고려 대상이 됐다. 가격이 충분히 떨어진 것 같은데다 ETF 승인 이슈도 있으니 자산의 1~2%라도 비트코인으로 해볼까라는 생각들을 갖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을 직접 사는 건 거래소를 통해서 지금도 가능하다. 다만 비트코인 현물 ETF가 국내에서 거래되는 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논란이 되었듯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가 금지됐다. 국내 증권사들은 해당 종목의 검색과 정보 제공을 막았다. 일단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 크다. 금융위원회가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자본시장법에 정의하는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금융기관이 상품을 기획하거나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

관계당국의 고심에는 시장에 미치는 우려도 녹아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한 심사역은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비트코인 선물 ETF가 막 출시됐을 때를 기억해보면 당시 관련 포럼들에서 만난 금융기관 관계자들이 헷지용으로 이 선물 ETF를 활용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관계 당국이 보수적으로 규제했기 때문인데 현물 ETF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허용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가상자산에서 한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걸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지난해 12월 블룸버그는 2023년 9~11월까지 비트코인 법정화폐 거래량 비중에서 원화가 약 41%를 차지해 40%를 차지한 달러를 누르고 가장 많이 거래한 통화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비트코인 ‘불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게 한국인들이라는 뜻이다. 금융시장에서 원화와 달러는 그 위상을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투자 영향력에서 세계 1~2위를 차지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가상자산과 관련된 금융안정 리스크로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 도입 가능성을 꼽았다. 반대로 말하면 한국인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의 리스크 노출이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트코인 회의론자인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ETF 승인을 발표하면서도 “비트코인을 승인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식 성명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조치가 비트코인을 보유한 ETF에 국한된다는 점”이라고 선을 그었고 “여전히 비트코인은 랜섬웨어, 돈세탁 등을 포함한 불법 활동에 사용되는 투기적이고 변동성이 큰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우려대로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금융시스템과 가상자산 간의 접점을 뜻한다. 비트코인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특히 금융기관의 투자는 네트워크를 끼고 있어 혹시 생길지 모를 위험이 더욱 빠르게, 더욱 넓게 퍼질 수 있다.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 탓에 급락장이 조성돼 인출 사태라도 생긴다면 금융 시스템 전반이 흔들린다. 국내 원화 투자의 강도(强度)를 생각하면 금융 당국의 고민도 납득이 간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그래도 미국의 결정을 따라가는 게 대세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비트코인 투자법 비트코인으로 투자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에는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매수해야 했다. 국내라면 ‘업비트’나 ‘빗썸’ 같은 거래소를 활용하면 된다. 반면 이제는 가상자산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투자 플랫폼이 또 하나 생겼다. 금융사를 통한 거래가 가능해졌다. 단 국내 관련 상품은 아직 출시 전이고 당국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ETF 종목의 검색과 정보 제공도 막았기 때문에 미국에 계좌가 있어야만 당장은 거래가 가능하다.

IT 전문매체 와이어드는 이번 비트코인 ETF 승인이 비트코인을 두 갈래로 나눌 거라고 본다. “투자자들의 비트코인과 이데올로그들의 비트코인으로 분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의 비트코인은 수익을 원한다. 그렇다면 접근성과 신뢰도가 높은 금융 플랫폼에서 ETF를 사는 게 편할 수 있다. 마운트곡스나 FTX 사례처럼 거래소 파산을 염려하지 않다도 된다. 굳이 비트코인을 구매해 지갑에 저장하는 번거로움도 감내할 필요가 없다.

반면 사토시 나카모토의 철학을 따르고 탈중앙화를 지지하는 이데올로그들은 비트코인을 거래소에서 현물로 매수해 저장하는 쪽을 택할 수 있다. 알트코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 역시 거래소를 이용해 구매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다만 비트코인이 제도권으로 들어온 이상 금융기관이 거래소보다 경쟁 우위를 가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바꿔 말하면 ETF의 비중이 점점 비트코인 현물 거래를 능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을 직접 사기보다 금ETF를 사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 현물 ETF의 최대 피해자는 가상자산거래소로 본다.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미국 대표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지난해 비트코인 ETF 승인 기대감으로 주가가 400% 가까이 뛰었다. 반면 비트코인 현물 ETF가 판매되기 시작한 지난 1월 11일부터 일주일간 10%가량 주가 하락을 겪고 있다. JP모건은 보고서에서 “초보 가상자산 투자자에게는 코인베이스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월가의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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