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기업 파산이 73% 늘어나는 등 중소기업 경영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규모를 30% 가까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말부터 ‘상생 금융’을 내세우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에 나섰지만, 결정적인 시기에 중소기업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양인성

18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신속 금융 지원 프로그램’ 실적에 따르면, 4대 은행이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공급한 자금 규모는 지난 2021년 2조1751억원에서 지난해 말 1조5867억원으로 약 27% 감소했다. 지원 건수도 같은 기간 1469건에서 1065건으로 28%쯤 줄었다.

중소기업 신속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란 일시적 자금 부족으로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시중은행들이 공통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1~2023년은 코로나 사태 이후 이어진 경기 침체에 고금리 기조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심화하던 시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신규 대출 기준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평균 연 5.31%로 2022년 10월 이후 15개월 연속 연 5% 선을 유지했다. 법원 통계 월보에 따르면 파산을 신청한 법인 수는 2021년 955건에서 2023년 1657건으로 73% 급증했다. 특히 파산을 신청한 법인은 대부분 중소 법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의 경영난 심화는 다른 지표로도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의 ‘국내 은행 부실채권 비율’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중소기업 대출 중 부실채권 비율은 0.64%로 전년 대비 0.11%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 중 부실채권 비율이 0.01%포인트 오른 점을 감안하면 상승 폭이 훨씬 컸다. 부실채권은 은행이 이자나 원금을 제때 못 받는 대출금으로, 거꾸로 기업으로선 이자와 원금을 못 낼 정도로 어렵다는 뜻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보수적인 여신 심사 체계와 건전성 관리 때문에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꼭 필요한 때에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시중은행들은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신용 등급이 낮은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도 줄였다.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실이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개 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저신용자(개인 신용 평점 하위 20%) 신규 대출은 16만6053건으로 2020년(23만5611건)보다 30% 줄어들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금융 당국 등쌀에 부랴부랴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금융 소외 계층 지원을 늘리는 등 ‘상생 금융’과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과거 실상은 반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다만 한 은행권 관계자는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 은행들이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하면서 시중은행들은 줄어든 측면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