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의 전기SUV 허머EV의 차량 주행모드를 ‘크랩워크’(옆으로 주행하는 게걸음 모드)로 바꾸니 중앙 스크린에서 3D 그래픽으로 차량 모습과 주행모드를 보여주고 있다. 게임 제작 소프트웨어인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GM

볼보자동차는 이달 초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의 제작사인 에픽게임즈와 협업을 발표했다. 에픽게임즈의 소프트웨어, ‘언리얼 엔진’을 볼보차에 탑재하겠다는 내용이다. 언리얼 엔진은 ‘내연기관 엔진’이 아니라 ‘게임 제작용 소프트웨어’다. 문서 작업을 MS워드로 주로 하듯, 리니지 같은 다수 인기 게임들은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올해 초 출시된 GM의 전기 SUV 허머EV에도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된 소프트웨어가 탑재됐다.

자동차 산업이 게임 산업에 손을 내민 이유는 ‘디지털 계기판·내비게이션·HUD(헤드업디스플레이)’ 같은 인포테인먼트시스템(차내 첨단 편의 사항)들이 모두 3D(3차원 입체) 그래픽으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은 게이머가 몰입할 수 있도록 3D 그래픽을 빠르고 실감나게 표현하는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왔다. 헨릭 그린 볼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운전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운전을 위해선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그래픽도 선명하고 몰입도가 높으면서 반응도 빨라야 한다”며 “언리얼 엔진을 통해 이런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볼보차는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차량 내부 조작을 3D 기반 디지털로 개발해 조작 속도는 2배 이상, 그래픽 처리 속도는 최대 10배까지 빨라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볼보자동차 개발자가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차량용 3D 그래픽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 중인 모습. /볼보자동차

이미 언리얼 엔진이 탑재된 허머EV는 미국 내에서 “디지털 계기판에 표현된 것들이 미래차 같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험지 주행이 가능한 허머EV는 차량 드라이빙 모드를 바꿀 때마다 디스플레이 속 배경이 바뀐다. ‘오프로드 모드’를 누르면 디스플레이 속 3D 배경이 황무지로 변하고, 수평·수직 흔들림이 올 때마다 차량의 미세한 각도 차이 변화까지 3D 그래픽으로 묘사해준다.

게임용 그래픽 처리를 목적으로 만든 반도체인 GPU(그래픽처리장치)도 자율주행차에 속속 탑재되고 있다. GPU는 복잡한 게임 그래픽을 표현하기 위해 동시에 많은 이미지 연산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이 때문에 도로 위 여러 이미지를 AI(인공지능)가 빠르게 계산해 판단해야 하는 자율주행에 최적화된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아우디·볼보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엔비디아 GPU를 탑재하고 있으며, 테슬라는 지난해 엔비디아 GPU A100을 8개 탑재한 자율주행 연구용 슈퍼컴퓨터를 공개하기도 했다. A100은 현존하는 최고 성능 GPU로, AI에 적용했을 경우 일반적 컴퓨터에 쓰이는 CPU(중앙연산처리장치)보다 속도가 최대 249배 빠르다. 엔비디아는 올해 초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이라는 이름의 자율주행용 GPU를 출시했고, 폴스타·니오·샤오펑 등 전기차 회사들이 이 GPU와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차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