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추진하는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이 진통을 겪고 있다. 애초 환경부는 지난 12일 보조금 확정안을 비상경제장관회의에 상정하고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업계의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며 돌연 이를 연기했다. 보조금 제도가 확정되지 않으면 전기차를 구매하는 이들 역시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완성차 업계에선 “업계의 반발, 통상 문제에 대한 우려, 엉뚱한 초기 설계 등이 뒤섞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배터리 ‘에너지 밀도’로 차등한다는데
이번 제도 개편의 핵심 중 하나는 전기버스가 속한 승합차의 경우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보조금 산정 기준에 넣겠다는 것이다. 기존엔 차량이 1㎞를 주행하는데 소비되는 배터리 전력량을 뜻하는 ‘연료 소비율’ 등의 개념을 사용했지만, 올해부턴 에너지 밀도를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500Wh/L 이상이면 보조금 100%를 지급하고, 450~500 Wh/L 는 90%, 400~450 Wh/L는 80%, 400Wh/L 미만은 50%로 깎는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다.
이는 사실상 에너지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LFP(리튬·철·인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중국 전기차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LFP배터리는 GS글로벌이 수입하는 BYD 전기버스 등 중국 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데, 대부분 에너지 밀도가 400Wh/L미만이다. 1대당 최대 1억40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 중국산 전기 버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0% 이상으로 오른 상황이다.
완성차 업계에선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중국이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운용하며 비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차별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은 자국 배터리가 탑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조금 차별을 뒀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성능이 떨어지는 배터리에 보조금을 덜 주는 것에 문제 될 것은 없다”고 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도 “보조금 제도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다고 보는 게 맞는다”고 했다.
다만 ‘에너지 밀도’란 개념 자체가 모호해 기준으로 삼기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주행거리 등 전기차의 성능과 관련해선 배터리 에너지 밀도 보단 용량이 더 관계가 크다”고 했다. 실제 LFP 배터리를 사용하는 BYD 버스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502.9㎞다. 국내산 배터리를 쓰는 다른 전기 버스의 경우 400㎞가량에 머무는데, 주행 거리가 더 긴 전기 버스가 보조금을 덜 받는 역설적 상황을 맞게 돼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한 중국 업체 관계자는 “LFP배터리가 한국 업체들이 주로 만드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성능이 낮다는 접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중국 업체들 대사관 통한 항의까지
환경부 입장에선 보조금 이슈가 통상 문제로 번지지 않을까 고심하는 부분도 엿보인다. 정부가 미국 정부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 사안을 논의 중이고, 중국 정부의 한국인 단기비자 중단 등 분위기도 껄끄러운 탓이다. 특히 중국 전기버스 업체 중 일부는 주한 중국 대사관을 통해 우리 정부 측에 서한까지 보내며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애초 환경부의 제도 설계 초안이 업체들에 반발의 빌미를 줬다는 비판도 있다. 환경부는 지난달 업체 설명회에서 ‘직영 서비스 센터’를 둔 곳에 보조금을 더 많이 지급하겠다는 안을 밝혔다. 보조금 설계 시 전기차 판매 후 사후 서비스까지 고려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직영’이라는 개념이었다. 벤츠나 BMW 등 서비스센터를 상대적으로 잘 갖추고 있는 수입차 업체들도 딜러사를 통해 차량을 판매하고, 이들을 통해 서비스센터를 운영한다. 직영 서비스란 개념이 사실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에 업계에서 이 개념 도입을 두고 혼란이 일었고, 수입차 업체들은 한 목소리를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환경부는 직영 서비스센터뿐 아니라 ‘협력 업체를 통한 서비스센터’도 인정하는 것으로 한 발짝 물러선 것으로 전해졌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환경부가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남겼고, 업체들에 반발 여지를 주는 불씨가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