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중국 자동차 굴기(崛起·우뚝 일어섬)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9일 본지가 주요 완성차 기업들의 작년 판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중국 1위와 2위 업체인 BYD(비야디)와 지리그룹이 각각 8위와 10위를 기록했다. 재작년 대비 판매량이 41.5% 급증한 비야디는 두 계단 올라섰고, 지리그룹은 판매량이 1년 새 22% 늘며 첫 10위에 진입했다. 그 외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도요타그룹(-3.7%), 폴크스바겐그룹(-2.3%), 현대차그룹(-1%) 등 일제히 판매가 줄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을수록 타격이 컸고, 중국 사업 비중을 줄인 포드와 중국에서 철수한 르노만 판매량이 전년 대비 1% 안팎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주춤한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이런 결과가 나왔다. 중국 기업들은 자국 시장에서 50%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공세를 높이는 한편, 독일과 일본 기업들이 안방으로 호령하는 유럽과 동남아 등 해외로 발을 넓히고 있다. 세계 차 시장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도 이런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 HMG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8427만대로 재작년(8261만대) 대비 2% 늘었다. 작년 늘어난 자동차 수요(166만대) 중 3분의 1 안팎에 달하는 65만대가 중국 시장 성장에 따른 증가였다.

그래픽=양인성

◇中 의존도가 명암 갈랐다

작년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중국 내수 시장 의존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중국 매출이 30% 안팎인 독일 자동차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떨어졌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작년 중국 판매량이 9.5% 급감하면서 글로벌 판매량도 1년 새 2.3% 줄었다. 10위권 밖이지만, 독일 BMW(-4.1%)와 벤츠(-4%)의 판매량이 1년 새 급감한 것도 중국 시장에서 매출 감소 때문이다. 일본 혼다 역시 작년 중국 판매가 약 85만대로 재작년 대비 30% 줄며 전체 판매량이 4.6% 줄었다.

글로벌 ‘톱 10′ 회사 중에서 판매량이 줄지 않은 것은 중국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한 회사들뿐이다. 르노닛산미쓰비시연합은 중국 사업을 접은 르노의 판매량(약 226만대)이 1년 새 1.3% 늘며, 전체 판매량도 1.1% 늘었다. 최근 몇 년 새 중국 공장 직원 수천 명을 감축한 포드 역시 1년 새 판매량이 1.3% 늘었다.

중국 시장에서 자국 브랜드의 영향력이 점차 세지면서 이런 변화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중국에서 국내 브랜드의 판매량은 약 556만대로 재작년 동기 대비 17.8% 증가했다. 이 브랜드들의 점유율이 57%에 달했다. 반면 독일(-6.2%), 일본(-12.4%), 미국(-19.2%) 등 해외 브랜드 판매량은 일제히 감소했다.

이런 판매 감소에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이자 전기차 소비국인 중국 내수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한편, 중국 투자로 인한 리스크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중국 투자를 내연차가 아닌 전기차로 한정짓고, 기존 중국 공장은 수출 기지로 탈바꿈시키며 대응하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작년 내연차를 생산하는 중국 장쑤성 난징 공장 등을 매각하기로 결정했지만, 전기차 R&D(연구·개발) 센터를 최근 새로 지으며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다. 도요타도 중국 상하이에 자사 고급 브랜드 렉서스의 전기차 공장을 짓는다고 이달 발표했다. 가동 예상 시점은 2027년으로, 초기엔 연간 10만대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항구 아인스(AINs) 연구위원은 “중국차가 자국 내수, 선진 시장에 이어 제3시장을 점령한 결과”라며 “중국으로 인한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시작됐다. 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사업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무역 장벽 넘는 中

미국·EU(유럽연합) 등 글로벌 시장에선 중국차에 대한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지만, 중국차는 해외 공장을 건설하고 제3 시장을 공략하며 확장하고 있다. 지커, 볼보, 로터스, 폴스타 등을 산하에 둔 지리그룹은 작년 중국 외 시장에서 판매량이 전체의 약 3분의 1(122만대)로 1년 새 21% 늘어났다. 비야디 역시 작년 중국 외 시장에서 판매량(약 41만대)이 재작년 대비 72% 안팎 늘어났다. BYD는 작년 태국에 해외 첫 전기차 공장을 완공했고, 튀르키예와 헝가리에도 공장을 짓고 있다.

막대한 내수, 정부의 지원과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생태계를 바탕으로 하이브리드 등 독자 기술을 늘려가는 것 역시 중국차의 성장 배경이다. 비야디의 작년 호실적은 전기 충전도 되고 기름으로도 달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PHEV)가 견인했다. PHEV 판매량이 재작년 대비 73% 늘어난 249만대였다. 순수 전기차(BEV)는 작년 약 176만대 판매되며 같은 기간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