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동차 관세 부과 시점을 4월 2일쯤으로 못 박으면서 지난해 미국 자동차 수입 시장에서 사실상 1위에 오른 우리나라에 직격탄이 우려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무관세 혜택을 받아 대미 수출을 늘려온 K 자동차에 관세가 부과되면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예상된다. 사진은 14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차량이 주차된 모습./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4일 자동차 관세 부과 시한을 ‘4월 2일’로 밝혔다. 앞서 10일 반도체·의약품과 함께 자동차에 국가를 가리지 않고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번엔 날짜까지 지정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 자동차 수입 시장에서 사실상 1위 국가에 오른 우리나라가 최우선 타깃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3월 12일부터 관세 부과와 상호 관세의 4월 시행에 이어 한국을 겨냥한 ‘트럼프 표’ 관세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달러(약 50조원)로 전체 대미 수출의 27%(1위)를 차지했다. 미국 시장 자동차 수출에 차질이 생기면 대중 수출이 급감하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오던 대미 수출마저 꺾이면서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자동차 관세 도입 시기에 대한 질문에 “아마도 4월 2일쯤”이라고 답했다.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 시행,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 발표 및 유보,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 계획 발표, 상호 관세 4월 시행 결정에 이어 다음 타자로 자동차를 지목한 것이다.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주요 국가 중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관세 부과 계획을 내놨고, 일본은 이미 미국 내 차 생산이 많다는 점에서 자동차 관세 부과에 따른 1차 타격은 우리나라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자동차 관세 시행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부터 의지를 보여온 만큼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래픽=백형선

◇ 독이 된 車수출 호조… 우회로 뚫은 日 대신 한국이 ‘관세 폭격’ 1순위

16일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자동차 802만대 중 한국산은 154만대에 달했다. 296만대 수준인 멕시코에 이어 우리나라가 미국에 자동차를 둘째로 많이 수출하는 나라에 오른 것이다. 1위인 멕시코가 자국 브랜드 없이 미국 자동차 빅3인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과 일본 자동차의 생산 기지 역할에 머무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1위인 셈이다. 1986년 현대차가 ‘포니 엑셀’을 수출하며 미국 시장에 상륙한 지 38년 만인 지난해 한국은 일본과 독일 등 주요 자동차 선진국을 제쳤지만, 오히려 그같이 우수한 성적표가 트럼프발 관세전쟁에서 불안감을 더하며 ‘독’이 되고 있다.

◇한국, 왜 미국 자동차 관세 1순위로 꼽히나?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미국 자동차 수입 시장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관세 혜택이 확대되며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 K 자동차는 코로나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 현대차·기아의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와 전기차 신차가 인기를 끌며 경쟁국들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수입은 2022년 94만대, 2023년 124만대, 지난해 154만대로 해마다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일본(138만대)과 캐나다(107만대)를 역전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 K자동차의 경쟁력이 강해진 것이 트럼프 시대엔 미국 현지 생산 압박과 함께 관세 보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10월부터 연산 30만대 규모 조지아주 메타플랜트(HMGMA)의 가동을 시작하며, 미국 내 생산능력을 100만대 수준으로 늘렸지만, 제네시스 등 수출하는 고급차 대부분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만큼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내 생산의 90% 이상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GM 한국 사업장은 존립 우려까지 나온다. 한국GM은 과거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구축한 부품 생태계 등 국내 제조 기반을 바탕으로 대미 수출을 지난해 42만대까지 늘렸지만, 관세가 붙으면 대미 수출 판로가 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GM 대미 수출 물량은 GM 미국 판매의 15% 수준”이라며 “우리나라에 대한 자동차 관세 부과는 미국 업체에도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살짝 비켜나간 일본

우리가 1순위 타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은 우리보다는 사정이 낫다는 관측이 나온다. 1980년대부터 미국의 압박에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며 면역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본은 1982년 혼다의 오하이오주 공장을 시작으로 닛산, 도요타, 스바루 등이 이미 인디애나와 켄터키 등 현지에 다수 공장을 건설·운영하고 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 업체들은 미국의 압박 강도가 높아지자, 1980년대부터 현지 수요의 상당 부분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미국 내 생산 비율이 우리보다 20~25% 높다 보니 관세 부과에 따른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 자동차 업체들엔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가 먼저 충격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본 기업들은 멕시코에선 닛산이 첫 해외 공장을 1966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했고, 캐나다에선 1986년 혼다를 시작으로 자동차를 생산해왔다.

◇ 향후 자동차 관세 어떻게 실행될까

지난 1기 때에도 자동차 관세 부과를 시도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자동차 관세를 거론하면서 이번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 보조금, 배기가스 관련 규제 등 비관세 장벽을 문제 삼아 압박의 강도를 한층 높일 것이란 얘기다. 이항구 아인스(AINs) 연구위원은 “관세를 무기로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미국산 부품을 더 많이 사도록 압박할 것”이라며 “하지만 이미 현대차·기아의 미국 현지 생산 능력이 100만대를 웃도는 상황에서 국내 생산 기반을 감안하면 미국 현지 생산을 갑자기 더 늘리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