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글로벌 자동차 생산 순위에서 7위에 그쳤다. 코로나 시기 중국, 미국, 일본, 인도에 이어 5위까지 올랐지만, 2022년엔 독일, 지난해엔 멕시코에 차례로 밀렸다. 우리나라에 있는 국내외 자동차 브랜드의 생산량 기준으로 글로벌 톱3 업체인 현대차·기아의 해외 생산량은 제외한 수치다.
내수 부진이 계속되며 판로가 좁아지는 가운데 해외 생산은 확대되면서 수출 증가 폭을 줄였고, 국내 생산은 감소했다. 미국 정부가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예고하며, 대미 자동차 수출이 줄며 국내 생산을 더 위축시킬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사면초가’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미국, 유럽, 인도 등으로 시장을 찾아 생산 기지를 옮기고, 중국 등과 경쟁이 심해지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격으로 국내 생산이 계속 줄어들면 톱10 자리를 지키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30만명이 넘는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은 물론 철강, 운송 등 전후방 연관 산업의 일자리 역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5년 만에 다시 7위로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10일 내놓은 ‘2024년 세계 자동차 생산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자동차 생산은 전년 대비 2.7% 감소한 412만8242대를 기록, 7위에 그쳤다고 밝혔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7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확산으로 각국의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에 차질을 겪었던 2020년엔 상대적으로 선방, 5위까지 치고 올라갔었다. 그러나 반 토막 났던 독일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2022년 6위로 밀렸고, 지난해엔 생산량까지 줄며 멕시코(420만대)에도 뒤졌다. 지난해 내수 생산은 전년보다 6.5% 감소한 163만5520대로 2013년(154만3565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수출도 0%대 증가에 그쳤다.
국내 자동차 생산은 수출 호조와 함께 2010년대 초반 정점을 찍었다. 자동차 수출이 315만대를 기록한 2011년엔 466만대였고, 2012~2015년에도 450만대를 웃돌았다. 하지만 해외 현지 생산이 확대되면서 수출은 300만대 아래로 떨어졌고, 지난해 수출 대수도 278만대에 그쳤다.
반면 해외 현지 생산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11년 23만대 수준이던 현대차 체코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은 이제 33만대로 늘었다. 같은 해 60만대였던 인도 공장은 75만대, 튀르키예 공장은 10만대에서 22만대로 늘었다. 2012년 이후 가동에 들어간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 공장을 합치면 연 40만대에 이른다. 기아도 기존 슬로바키아, 조지아 공장이 10% 이상 늘었다. 연산 80만대에 육박하는 멕시코와 인도 공장은 2010년대 후반 들어 가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연산 30만대 규모의 조지아 메타플랜트(HMGMA)가 가동에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국내 생산은 더 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 자동차 업체의 국내 공장은 IMF 외환 위기 이전에 만들어진 곳이 대부분”이라며 “사실상 문을 닫았던 한국GM 창원공장이 2023년부터 본격 가동되며 연산 400만대를 회복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생산 확대는 어려울 듯
향후 관세 부과로 인해 미국 수출 시장 등이 쪼그라들고 해외 기지 생산이 확대되면 300만대 초반까지 생산량이 급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생산량의 95%를 수출하는 한국GM의 존립도 위태롭다. 한국GM은 미국 GM의 소형차 생산 기지 역할에 집중하면서 지난해 생산량이 50만대에 육박했지만, 앞으로 미국 내 생산을 압박하는 트럼프발 관세에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주 52시간제 시행, 높은 인건비 부담까지 더해지며, 2023년 기록한 연 424만대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관세가 부담을 키우는 가운데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이 EU(유럽연합) 등 선진 시장까지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면서 생산에 타격이 예상된다”며 “완성차 업체의 해외 생산 기지가 확대될 경우 현지 조달이 늘어나면 영세한 부품 업체들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