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CEO(최고경영자)인 호세 무뇨스 사장이 20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향후 10년간 900억달러(약 131조원)를 투자해 신형 전기차 21종을 개발하고 하이브리드 모델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 장기화 속에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투자를 속속 줄이고 있지만, 현대차는 오히려 전기차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무뇨스 사장은 “(전기차) 아이오닉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여 더 큰 규모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예정”이라며 “배터리의 비용 절감, 효율성 증대, 주행거리 향상도 함께 실현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이날 CEO 취임 후 첫 주주총회에 참석한 무뇨스 사장은 전기차 캐즘, 글로벌 통상 환경 악화 같은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차는 작년 영업이익과 글로벌 판매량이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올해는 최대 해외 시장인 미국에서 관세로 인해 높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내수가 침체된 데다가 유럽과 중국 등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해외 시장에서 판매가 줄고 있어, 미국에서 관세가 부과될 경우 타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전기차 캐즘 속에 현대차 점유율이 1% 수준에 그치는 중국 전기차 시장만 급성장하고 있단 점도 악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에서 중국 비율은 65.9%로 1년 새 6%포인트 안팎 늘었다. 반면 2위 유럽(17.6%)과 3위 미국(10.4%) 모두 재작년 대비 비율이 줄었다.
◇관세·캐즘 정면 돌파
이날 무뇨스 사장은 “권역별 최적화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수익성을 제고하겠다”며 “상이한 규제 및 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생산 현지화 및 부품 소싱 다변화를 통해 공급망을 최적화하고자 한다”고 했다.
최대 해외 시장인 미국에서는 현지 생산을 늘리며 관세 리스크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무뇨스 사장은 작년 조지아주에 지은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언급하며 “혼류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하이브리드 모델도 추가 생산할 계획”이라고 했다. ”주요 시장인 미국 내 현지화 전략을 통해 어떠한 정책 변화에도 유연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전기차 캐즘 속 중요성이 점차 커지는 중국 시장과 관련해선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을 위한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중국 내수 전용 전기차가 출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는 올해 처음으로 모터 두 개를 탑재한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를 비롯, 신차 10종을 출시한다.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는) 전기차 전환을 주도하면서도 자동차 사업이 소비자 수요에 기반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하이브리드차, 주행 거리 연장형 전기차는 물론 수소 연료전지차에도 투자해 왔다”며 “고객이 원하는 기술이 탑재된 뛰어난 제품, 우수한 구매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현대차는 작년 말 미국에서 자동차 업체 중 처음으로 아마존에서 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무뇨스 사장은 “더 많은 딜러들을 이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업체와 협업도 확대한다. 작년 현대차는 전기차 ‘아이오닉 5′를 구글 자회사 웨이모 로보택시(무인 자율 주행 택시)로 투입하기로 했고,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자동차 기술 개발과 생산 등 전방위적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무뇨스 사장은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전략적 협업을 확대하고, 그룹 내 계열사와도 긴밀히 협력해 물류와 금융 등 분야의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라고 했다.
◇수소 사업 확장 속도
한편, 현대차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정관의 사업 목적에 ‘수소 사업’을 처음 추가했다. 작년 현대차가 현대모비스의 수소연료전지 사업을 인수해 기술력과 자원을 통합한 데 이어, 수소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에너지&수소MI실 이인아 상무는 “현대차그룹 차원의 역량을 결집해 수소 밸류체인 전반에서 수소 생태계를 확장하고 동반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는 지난 30여 년간 이어온 수소 사업을 앞으로도 글로벌 제반 환경 등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유연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현대차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고, 진은숙 현대차 ICT 담당 부사장을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진 부사장은 현대차의 첫 여성 사내이사다. 김수이 전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글로벌 사모투자 대표, 도진명 전 퀄컴 아시아 부회장, 벤자민 탄 전 싱가포르투자청(GIC) 아시아 포트폴리오 매니저 등 3명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하며 IT(정보 기술)와 반도체 분야 전문가 중심의 이사진 개편도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