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공식화한 27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들에 세워져 있다./연합뉴스

인천에 있는 한국GM 부평 공장(미국 GM의 한국 사업장)은 최근 미국발 ‘관세 폭탄’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인력 감축설에 이어 철수설까지 불거지면서 불안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회사 측은 아직 부인하고 있지만, 자동차 관세가 시행되는 4월부터 부평 공장 생산 물량을 줄일 것이란 말도 나온다.

한국GM은 2018년 군산 공장이 문을 닫는 부침 속에 대미(對美) 수출 기지로 탈바꿈하며 살아나는가 싶었지만,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25% 관세 부과가 눈앞에 다가오자 존립까지 위태로워졌다.

◇대미 수출에 직격탄

자동차는 우리나라 대미(對美) 수출 1위 품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달러(약 51조원)를 웃돌며 미국으로 향한 전체 수출(1278억달러)의 27.1%를 차지했다. 우리 자동차 수출에서의 비율도 절대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액(708억달러) 중에서 대미 수출액은 49%를 웃돌았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 폭탄이 한국 수출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그래픽=김성규

과거 현대차, 기아, 대우차, 르노삼성, 쌍용차 등이 각축을 벌이던 완성차 업계는 이제 현대차·기아, 르노코리아, 한국GM, KG모빌리티 체제로 바뀌었다.

특히 트럼프발 관세는 역설적으로 미국 업체인 GM의 한국 사업장에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지난해 한국GM이 생산한 49만7000대 중 84%인 41만9000대는 미국으로 향했다. 부평 공장은 ‘트레일블레이저’, 과거 티코 등 경차를 만들던 창원 공장은 ‘트랙스 크로스오버’ 등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해왔다. 그동안 한국GM은 대우차 시절부터 쌓은 부품 생태계와 숙련 인력 등을 무기로 저가 모델을 미국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활로를 찾았지만, 이제는 그 같은 전략이 ‘독(毒)’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들 소형 SUV의 마진율은 한 자릿수”라며 “25% 관세가 붙으면 수출 길이 막힐 수밖에 없고 경영 전략을 다 새로 짜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모든 자동차에 관세 25%를 부과하겠다”며 자동차 관세 정책을 공식 발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예고해 온 ‘상호 관세’ 역시 내달 2일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UPI 연합뉴스

현대차·기아 역시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의 관세 정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은 총 184만대(도매 기준)로, 이 중 한국(102만대)과 멕시코(15만대)에서 생산한 물량이 전체의 64%에 달했다. 특히 영업이익률이 높은 제네시스 등 고가 모델들이 주로 한국에서 생산돼 타격은 더 클 전망이다. 현대차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보내던 15만대를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하지만 국가별 안전 사양 등이 달라 단기간 내 물량을 돌리기는 쉽지 않아 고민이 커진다.

르노코리아 역시 올 하반기부터 유럽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를 국내에서 위탁 생산해 미국 등에 수출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러운 관세로 차질을 빚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KG모빌리티는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물량은 없지만, 국내와 호주·헝가리·튀르키예 등 기존 시장에서 경쟁 격화를 우려하고 있다.

◇관세 우회로 찾는 업체들… 영세 부품 업체는 ‘울상’

관세를 피하기 위한 움직임은 바빠졌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준공식을 가진 ‘현대차그룹 메타 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20만대를 추가 증설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엔 미국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또 다른 관세 우회로를 확보했다. 현대차가 전기 상용차와 SUV 등을 반조립 상태로 수출하면 GM이 미국 현지에서 조립·판매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완성차와 비교해 국내 자동차 부품 업계는 상황이 더 나쁘다. 수출이 타격을 입으며 국내 생산량이 감소하면, 국내 차 부품·소재 협력사는 경영난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 핵심 부품’에도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 대다수 부품 업체가 관세 영향권 아래 놓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자동차 부품 업계의 대미 수출액은 지난해 82억2200만달러(약 12조원)로, 전체 수출액의 36.5%를 차지한다.

특히 영세한 곳이 많다 보니 관세와 같은 충격에는 속수무책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관세 때문에 완성차 업체의 해외 생산 기지는 확대되는데 자동차 부품에도 관세가 부과되면 현지 조달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관세 부과는 영세 업체들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전망”이라고 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후 자동차·자동차 부품 업계와 만나 긴급 대책 회의를 갖고 “4월 중 자동차 산업 비상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