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전기차들이 침체했던 전기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1분기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증가한 가운데, 소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인 기아 ‘EV3’와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이 판매량 순위 1·2위를 차지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가성비와 디자인, 성능까지 두루 갖춘 소형 모델들이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어, 길어지는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을 해결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커진다.
21일 시장조사 업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1분기(1~3분기) 신규 등록 전기차는 총 3만3482대로 집계됐다. 전기차 인기가 주춤했던 지난해 1분기(2만5550대)보다 31%나 늘어난 수치다. 올 1분기 전체 신차 등록 대수는 40만874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3% 감소했지만, 전기차 판매량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다.
전기차 판매량 반등의 1등 공신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판매한 소형 SUV EV3와 캐스퍼 일렉트릭이었다. EV3와 캐스퍼 일렉트릭은 올 1분기 각각 5065대와 2724대가 팔려, 나란히 전기차 판매량 1·2위에 올랐다. 큰 차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서 소형 전기차가 양강 체제를 굳힌 건 이례적이다. 실제 지난해 1분기 전기차 판매량 1위는 테슬라의 중형 SUV ‘모델 Y’가 차지했고, 그 뒤를 현대차의 소형 트럭 ‘포터’가 이었다.
EV3와 캐스퍼 일렉트릭은 저렴한 가격에도 주행을 보조하는 첨단 기술을 대거 적용해 가격과 성능 두 가지를 모두 잡은 차량으로 꼽힌다. 최첨단 소형 전기차들이 경기 불황에도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지난주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5 뉴욕 국제 오토쇼’의 ‘2025 월드카 어워즈’에서 기아 EV3는 세계 올해의 자동차,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은 세계 올해의 전기차에 선정돼 성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기아 EV3는 공인 주행거리(롱레인지 모델·17인치 타이어 기준)가 501㎞로, 이미 출시된 중형 전기차 못지않은 수준이다. 기능이 비슷한 부품을 한데 묵는 ‘패키지 설계’ 방식 때문에 실제 전장(4300㎜)과 축간 거리(2680㎜)에 비해 실내 공간이 넉넉한 것 역시 인기 요소로 꼽힌다. 기아 전기차 최초로 AI(인공지능) 기반 음성 인식 기능을 담았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도로 상황 등을 고려해 자동 감속해 주는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도 적용됐다. 그런데도 가격은 롱레인지 모델이 4650만원에서 시작한다. 세제 혜택과 정부·지자체 보조금 등을 더하면 3000만원 중후반대에 살 수 있다.
귀여운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은 롱레인지 모델 ‘인스퍼레이션’이 3150만원에서 시작한다. 보조금을 적용하면 가격은 2000만원 초반대로 내려간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내연차보다 길이 230㎜, 폭 15㎜가 늘어나, 경차이던 기존 캐스퍼에 비해 실내 공간도 넓어졌다. 1회당 주행거리는 완충 시 315㎞다. 차가 멈춰 있거나 저속으로 달리다가 가속 페달을 세게 밟으면 차를 세우는 페달 오조작 방지 기능도 있다. 차량 전후방 1m 이내에 장애물이 있을 때에도 이 기능이 작동한다.
예년보다 일렀던 정부의 보조금 정책 발표도 올 1분기 전기차 인기 회복을 이끈 요소로 꼽힌다. 환경부는 올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작년보다 한 달여 이른 1월 15일 발표해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을 앞당겼다.
업계 관계자는 “합리적 가격과 첨단 기술, 실용성을 갖춘 소형 전기차 모델이 젊은 세대의 전기차 구매는 물론 전기차의 대중화에도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